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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Feb 25. 2024

14. 고립된 사람을 피하지 마시고

- 말을 걸어 주세요


머릿속 기억들아, 나 따라오지 마



나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마지막 정리를 위해 들른 날이었다.

정리랄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컴퓨터였다.

보직 변경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우려가 있어서

컴퓨터는 포맷시키지 않았었다.

그리고 휴일이었던 그날

포맷하고 반납을 칠 생각으로 나간 거다.


그런데 어라?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직 사용자 암호도 걸려 있는 상태로

끌려(?) 간 내 컴퓨터를 어쩐다니.

업무용이지만 나의 시간을 함께 한 컴퓨터를

내 반납 절차를 거치거나 확인할 필요 없다고

송과장이 걷으라 했나 보다.

그는 왜 그리 내 업무용 컴퓨터에 집착할까.

휴직했을 때도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묻는다는

인사를 할 줄 모르는 듯

컴퓨터는 어떻게 했느냐고만 묻더니만

인사 발령이 나자마자 수거해 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실상 컴퓨터는 우리 업무 환경에서 손과 발이다.

내가 찍혀서 고생하는 동안

내 컴퓨터를 속도 떨어지고 사양 낮은 것으로

지급하려고 온갖 핑계를 대며 버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내가 잘 될까 봐 잘 할까 봐 ?

자기 돈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아끼고 아낀 그들.


사실 그 정도는 약한 레벨이었기 때문에 

그럴 줄 예상했기 때문에 돌아서서 웃는다.

어차피 중요 자료는 컴퓨터에 두지 않은지 오래 됐다.


예를 들어 내가 브런치에 쓰는 글은

사무실 내 책상 위 컴에는 저장 안 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있었으니까.





외부 사회와는 경쟁조차 되지 않건만



내부에선 나름대로 치열하다.


‘자기 관리’가 그만큼 되어야 한다.

비슷비슷해야 하고

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따르며

치고 나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번 승부가 나면

상명하복하고

토를 달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엮일지 모른다 생각하니

면전에서이지만 사회생활 멘트가 활발하다.


“아이고 강대리 잘 됐어.

내가 강대리는 승진할 줄 알았다니까.“

(네 꼴 안 보게 되니까 차라리 속 시원한데)


“과장님 어제 회의중에 주신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모쪼록 부장 되시는 날 저도 좀 끌어 주세요.”

(능력 있었으면 벌써 부장 달았지.

횡설수설 하는 말투는 어제도 여전하던데)


이런 사회에서는 힘을 갖길 원하는 사람이

힘을 가질 확률이 높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자리’는 어떻게 된 건지

약자를 더 궁박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


새내기, 계약직, 말없는 소수자들,

심성이 남보다 여린 사람들,

끈이 달리 없어서 독고다이인 직원에게는

일벌백계하고


서로 어깨를 걸고 틈만 나면 규합해서

자기들이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들에겐

저자세다.





나도 그랬었지



당해 봐야 알지라는 말을

1979년 12.12쿠테타의 주역 중 한 사람이 했다고 한다.

그에게 ‘당해 본’ 사람이 들으면

파르르 떨리고 상처가 도질 것 같은 말이다.


내 ‘전 희생자’가 있었다.

그를 과장이 대놓고 미워하고

부정 평가를 여기저기 늘어놓았을 때

나는 그와의 이해관계가 별반 없을 때여서

단지 혼자 점심을 굶다시피 하는 건가 하고

유심하게 지켜만 보았다.


그러다가 무경험에 의한 업무 미숙으로

그가 다시 도마에 올랐을 때

나는 그를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과장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끔 도왔다.

과장은 내 상사였고

나는 오랫동안 단련된 하위의 보조자였다.


그 후 시간이 흘러 그가 남기고 간 사물이

눈에 들어온 날이 있었다.


사람은 떠나고 물건이 남았다.


나는 내 눈 앞에서 ‘당해 본’ 그를

기억에서 끄집어 냈다.

업무 추진의 효율성, 인풋 대비 아웃풋의 효과성, 조직이 기피하는 민원 제기의 사전 예방이라는 팡계로


그를 과장이 몰아낼 때

내가 한 일은


과장이 내게 한 일의 축소판, 또는 예고편 같았다.


업무 조정이 늦어지면서 뒤늦게 부서 발령을 받았던 나는 기존 멤버들이 합창하듯 같이 부르는

그 희생자에 대한 노래에 의심을 갖지 않았고


그가 팀에서 몰려 나가고 나서

그가 쓰다 구석으로 간 사물을 보면서

내가 스스로 위안했던 것은


고작

“밥은 먹고 다니세요?

시간 되면 한번 식사 같이 해요.”

같은 힘없는 말을 내가 건넸다는 기억 뿐이었다.


사람들을 나도 피해 봤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피할 때

사실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래도 피하지 말고 다가가서

말을 걸어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나도 누가 말을 걸면 그랬고

나의 전 희생자도

나의 밥 먹자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관뒀지만


사람이 고립됐을 때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사람이 다가가는 것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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