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생각 자체를 없애는 것이 삶의 ‘한 방’이다.
순간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서 사람은
패턴을 찾지 못하고 한순간 암흑을 보게 된다.
그때 나를 잡아 준 사람은
다름 아니라 브런치에서 글을 읽어 주는
누군가(somebody)들이었다.
내가 쓴 글이, 내 손을 떠난 글이
누군가의 눈에, 마음에 닿았다는 것을
그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쓰게 했다.
괴로운 의무감이 아니라, 아주 ‘즐거운 의무’가 됐다.
상처 가득한 내가 비로소 조금 행복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왕따되고 소통할 수 없었던 ‘고구마’ 같은 느낌과는
정반대여서
물이 흐르듯 자연(自然)이어서
나는 거기 슬쩍 내 몸을 맡겼다.
과거 조직이 갖고 있던 틀(framework)을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면
다 바꿔놓고 나오는 건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와서 나는 내 상처를 돌보고
무엇이든 도전할 새 근육을 만들고
소통이 즐거운 세상에 귀속했지만
‘하지 않은 일’의 무서운 결과가
그들이 당연하게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할
많은 사람들의 삶에 불러올 참담한 미래를 생각하면
내가 그들과 같은 시험을 봐서 들어갔고
그들과 같이 ‘한솥밥’을 먹었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일도 큰 일처럼 생각하기는 커녕
아주 작은 일부터 “내 일 아니”라며,
“제가 왜 그걸 해야 하느”냐며 금을 긋는 이들과도
- 밖에서 내부를 보면 -
난 오래 엄청 괴로워했다.
일부러 그러려고,
괴로움을 극대화하려고 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생긴’ 사람이었다.
하고 보니 참, 미움의 대상이 될 만 한 이야기이다.
다들, “누가 요즘 세상에 남 걱정을 하냐?”고,
“그래 봐야 헛수고일 뿐”이라고 말한다는 걸 잘 안다.
죽기 아니면 죽은 척 까무러치기
일을 내려놓고
일만 했던 나를 챙겼다.
나에게 집중하니 결과값이 좋았다.
독서도 그런 것이
지금은 내 눈이 책에 달려가 붙는다.
한 주가 지나도록 책 뚜껑도 열지 못했었는데
같은 내가
이젠 하루에 300쪽 짜리 책 서너 권을 읽는다.
모든 재화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좋은 것은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치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이미 누군가가 인정하는 것,
고흐의 그림이 1조원에 팔린다는 게
아마 사실일 것이다.
나는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힘 없고 돈 못 번 ‘공무원’이었고
예기치 않게 거센 따돌림을 받았다.
‘남의 시선’, 중요했다.
신경쓰지 말라고 해도 말처럼 되지 않았다
일에 스스로 매몰된 때의 내겐.
하지만 나의 쌩얼은,
아무런 메이크업이 없는 그냥 ‘나’란 존재를 돌아보니,
내가 공동체나 조직의 일원이 아니고
만약 오직 개인이고 혼자였다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아주 하찮은 능력의 소유자였다.
일에서 내려와 보니
일한다는 핑계로 제대로 해 본 게 없다는 걸 알았다.
‘타인의 눈치’를 안 보는 세상이 도래하니
스스로 살아가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졌다.
내 이야기는 -
그런 나와 비슷한 생활 능력자에 불과했던
과장이나 그저그런 이들이
- 그들 눈에 넘쳐나던 내 능력치나 스펙, 외모, 성격, 대인관계 기술 등등
, 그 무엇이라도 ‘그들 눈에 쓴 안경’이었으니 부언하지 않기로 하자-
꼬투리 잡아 나를 제거하고
내 싹까지 잘라버린 이야기가 맞다.
그런데 이야기는,
내가 책을 열 권 빌려주는
도서관 이벤트에 희열을 느끼고
새로 생긴 'OO 사 모으기' 취미로 올인하고
갑자기 평생 일만 하고 앉아만 있어
자극 받은 적 없던 근육을 혹사시키면서
그걸 ‘운동한다’고 표현하는 ‘광’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로 번질 수 있다.
과장은 내가 죽기를 바랬을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이런 말도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한 위해(危害)는
결국 나를 더 강하게 살게 한다.(?
정확한 워딩은 애플 메모장 에버노트에 적혀 있는데,
요즘 에버노트 가격 방침이 ‘진화’하면서 - 아마도 자본주의 때문에-
메모장이 한번 날아간 것으로 보여서 좀 당황된다.)
모든 문제, 모든 어려움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그게 살아남는 자의 ‘더 시크릿’(‘the' 비밀)이다.
언뜻 봐선 별거 아니게도.
혼자 대오에서 낙오되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는가.
나는 경험했다.
혼자 낙오되면 (대장이 와 주길) 기다린다.
작은 소리에도 놀랄 만큼
목을 매어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대장이 자기자신만 챙기기도 바쁜 상황이고
내가 기다린다는 생각만으로도 버거운 사람이라면
-대개의 경우가 그럴 건데-
기다리는 사람은 애가 마른다.
그러다가 바윗돌이 내 머리를 때리고
내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지 않으려면
제 힘을 다 해서, 그니까 쥐어짜기라도 해서
살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번쩍 정신이 든다.
나는 그렇게 해서 살아나왔다.
대장은 지금까지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슬퍼지려고 했을 땐
‘각자도생’ 자체가 아니라,
각자 살아남은 뒤에라도
내가 대장이 와 주길 기다린다는 걸 깨달았을 때이다.
결국 진실을 말할 때가 왔다.
나는 인생의 많은 기회를 다 썼다.
그 때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교묘한 방법으로
내 머리를 망치로 때려서 기절시키고
혼자 살겠다고 탈출한 사람,
처음부터 나를 공격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다가
방심하는 순간에 급소를 찌른 사람,
자신이 살아남은 후에 ‘너도 인맥이 있을 텐데? 내가 굳이?’라고 반문해서 차단한 사람
등등 늘 ‘사람‘이 끼었고
나는 급속도로 의욕을 잃었다.
그들과 함께 좋았던 시간들을 떠나 보내는 건
항상 힘겨웠다.
- ‘김부장 이야기 1, 송희구, 136쪽 -
이제 나는 가장 바라지 않았던 결과 안에
덩그러니 있다.
일에 대한 확신-
이것은 좀 구리지만, ‘하면 된다’(?) 같은 것이었다.-
이 없으니
‘일하는 스님’과 같은, 책을 읽다 저 표현에
뼈 맞는 심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실패는 싼, 저렴한 것이 아니어서
약값과 많은 병원 순례비가 들어간다.
비용 대비 만족도가 또 현저히 낮다.
우울하고 침체된 날, 난 드디어 구원되었다.
“남이 나를 도와 줄 거라고 기댄다는 것은
결국 내가 이기적인 것“이었음을
위 책 글귀에서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그렇게 내려놓은 그 날
이 분의 출연 영상을 봤다.
“시장님이 시켜서 했어요.”다.
https://www.youtube.com/watch?v=Smsl7L5cZ3g
나는
시키지 않아도 했던 나였을까
욕 먹을 각오도 했던 나인가
되돌아 본다. 참 많이도 또.
그러나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어려웠다.
적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쯤엔 생각하고 있다.
‘만들’었거나 ‘생겼’거나 관계없다.
언젠가는 적이 있고
또 적을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구속도 제재도 많은 직업이고
어떨 땐 ‘신분’처럼 느껴진다.
일에 관한 한 정답이 없고
말로만 ‘혁신’을 외친 사람들에게
속은 때도 많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을 뒤로 하고
숨은 듯 살면서
내가 매달린 ‘일’이란 것이 그럴듯 하게 되기 위해
변화를 주는 사람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공식적으로 부인할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됐다.
상처 입고 스스로 힘에 겨워
더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자로서,
아직도 ‘잘 굴러 가기만 한다면‘
모든 힘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 나.
‘일을 참 사랑한 나’를 끌어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