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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Apr 28. 2024

36. 자랑할 일을 자랑해야지

-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굴복시킨 건, 아니지


좀 자고 깼다.

새벽까지 전화로

“아무도 날 안좋아할거같아”, “난 가치 없는 인간같아.“, ”내 자신이 너무 싫어.“ 그리고 ”죽고 싶어“

라고 하는 친구와

‘사는 방법’ 보따리를 풀다가

브런치 여행으로 빠져들어

동 터서야 잠을 잤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나의 글쓰기만이 아니라

작가님들 글 ‘타기’에 자주 압도된다.


https://brunch.co.kr/@kimmiracle/307

(‘세상에 서너 개 이상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https://brunch.co.kr/@p-live/75

(‘천진해서 고맙다.’)


https://brunch.co.kr/@joonjhhur/196

(‘실패한 프로젝트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다’)


https://brunch.co.kr/@paulchang/614

(‘세바시 대학이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


글을 쓰다 글을 넘고 넘어 다시 와서 쓴다.

빈 말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내 글이다.




 

천 년 동안 기다린 만남



“OOO부 신 @@ 입니다”

쾌활한 목소리로 남의 자리 전화도 다 당겨받는

신 사원이다. 지치는 법이 없다.

아무리 전화 벨이 울려도

내 것이 아니면 당기지 않았던 그들이 떠오른다.


나는 여기에 어떻게 와 있나 정신을 차릴래도

간혹 여기가 거기인지, 거기가 여기인지 섞여 보인다.

사건이 일어났을 땐 나의 주도권은 자취를 잃었고

무력화된 상태에서도 얄궂은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다.


한 번의 생에서 천 년 동안 살 리가 없는데도

뭔가 끌리고 당기며 잊혀지지 않아

오래도록 간직하게되면

그 땐 백 년도 짧다.

‘천 년’은 되어야 사랑한 거지.

아주 오래 기다려 온 일이 일어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슨 ‘금사빠’ 같은 소린가 싶으실 것 같다.


그런데 ‘임자’를 만나도, ‘원수’를 만나도 딱 그랬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이러려고 천년을 기다란 감회! 아니면 낭패감!

둘 다 크나큰 것이었디.


처음에 사람을 만나면 긴장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나 같은 경험의 소유자는 더 긴장한다.

직장에서 격분한 상사로부터

고함지르기, 밀치기, 노려보기,

없는 사람 취급하기, 왕따시키기

등을 당한 사람은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와 같은 정신적 충격,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한다 해도 그건 엄청난 부담이다.

그런 이유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질서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느끼는 일반적인 긴장감이

나 같은 경우엔 최고조로 올라갔다.


물론 처음엔 다 좋았다.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혹은 보여줘야 할 모습을

대방출하는 초기의 시간들. 그러다가

뭔가 터질 것 같은 위태로운 순간들이 다 지나면

결국은 전광석화처럼 불이 번쩍 붙고

쨍그르르 땡그르르 와르르~~

서로에 품었던 기대와

서로를 향했던 불안한 생각들이 모두

깨지고, 우려가 현실로 눈앞에 나타난다.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다면

그것이 변하지 않을 때라야 의미가 있다.

천 년을 두고라도 기다릴 만한 것은

변치 않는 마음이다.

흔히들

돈 때문에 틀어지고

비용과 부담이 공정하지 않게 나뉘었다고

불만 끝에 헤어지면서

‘성격 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못 찾았다고 말한다.

각자 자기에게 최선을 다 하는 거다.

상대방에게보다는.


예전의 성실하고 기준이 높았던 나는

일에 대해 유독 최선을 다 하자고 의미를 많이 두고

별점을 세(쎄)게 줬더랬다.

지금에 와서는 최선 다 하지도 못한 

자기 자신을 어째도 돌봐야 했고,

그에 투입되는 시간은

그 무엇에도 앞선다고 생각하고 산다.


달리 뭐가 있다면 ‘가족’ 정도?

모든 기를 다 꺾이고 나서 깨달은 것이다.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무서운 이유



한 동안 나의 사회성을 의심했다.

정황상 그럴 만한 이유는 없지 않았다.

나를 학교에 처음 입학시켰을 때 나의 엄마는

“출생신고가 잘못 되서 학교에 일찍 들어갔고

결과적으로 많게는 18개월이나 나보다 빨리 태어난  아이들과 경쟁해야 했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안타까움이 크셨다.


그런 기억까지 다 끄집어냈다는 것은

내가 궁지에 몰려 있었던 상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 스스로 ‘사회성’이란 것을 의심할 나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들의 시야에서 내가,

나의 안중에서 그들이

빠진 상황에서

‘나’란 시스템은 정말 잘 가동되고 있다.


우리 조직에서는 관리자급 리더 선발의

별도 기준이 없다.

그저  점수가 높으면 관리를 한다.

실력이 없어도 관리자가 된다.

걔 중엔 점수를 영끌하면서 ‘그 날’이 오면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을 지배할 생각으로 

기다려 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 축에는 끼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했고

어차피 같은 사람이라고 봐 주지도 않았다


설상가상 정신이 들고 보니까 나는

직장내 따돌림 피해자인 데다가

일 잘하고 헌신적이래봐야 집도 없는 바보’(‘김부장 이야기 3, 송희구, 290쪽)였다.


부랴부랴 집을 구해놓고

다시 보니까 나를 제끼려고 잔뜩 힘을 주었던

과장의 소식이 들려왔다.

자기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는 듯이

잘 지내고 있단다.


과장이 짐을 싸서 떠나는 것을

나는 병이 나 있어서 볼 수 없었다.

안 봐도 그 짐이란 게 얼마나 많았을지,

어떻게 다 가지고 나갔을지 등등

상상이 갔다.

뭐 하나 그 흔한 당근마켓의 ‘나눔’도 없이.

그리고 가서 ‘내가 성대리를 눌러 줬어’에 관련된

썩소를 날리면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금쯤은 그의 예정으론 ‘죽어 있어야 할 나’인데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과장은 착각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존 윅’인 줄.


https://m.blog.naver.com/jangkkoo/221436720595





뭘 해도 사람



이번 주엔 ‘뭘 해도 결국 “사람“이로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지치고 제 풀에 꺾였다.


민원을 ‘케이스’로만 보려 하지

‘그 안에 누군가의 삶이 서려 있다’는 생각이 없는 

팀원에게 실망하곤 했던 나.


바깥 세상이라고 다를쏘냐.

사람을 수익원으로 보고

그가 내놓는 고민과 고뇌의 호소를

굳이 자신의 일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습관이 전혀 안 된 작업자들.


실력과 혜안은 뭐가 와서 물어갔는지,

소지한 자격증과 그것을 취득한 자신의 아집만 가진 사람들이

도처에서 간절하게 소기의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각자의 종교를 동원하기까지 해서

두 손 모은 이들을 배반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Q93L0tzqQg

고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가 원픽이 된 날.


그건 사실 ‘무자격’으로 규정되며

우리 사회 자격증만으론 일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입법과 그를 위한 공감대가 있어야

성숙을 키우고 화근을 잘라내지 않을까,

나는 급 진지해졌다.


하필 이런 때에

‘인간성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잣대(는): 어떤 사람이 약자와 강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차이’( ‘또라이 조직’, 로버트 서튼, 38-39쪽)를 읽은 것이

우연이겠냐 하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역시 한 주간을 기울여서

‘천 년을 기다려 온 만남’은 있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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