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꾸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걸림돌이 될 수도.
부제를 보시면 거부감이 느껴지실 수 있는데
‘나 혼자 대단한’ 거다. 나 혼자다.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어
삶이 달라졌다는 자각을 한다.
어제 나를 치료 중인 선생님으로부터
"열정이 대단하시네요"라는 말씀을 들었다.
"살살 하세요~"라는 걱정도 같이.
그러니까 ‘열정만 대단’한 거일 수 있겠다.
나는 /일/에 대한 과거 나의 열정을 고스란히
나 자신을 위한, 나의 관심사에 대한
열정으로 치환해 놓고 있다.
과장이 나를 ‘팽’시켜야겠다고 결심했을 때까지는
나 자신부터가
‘나’라는 공이 어디로 튈 것인가를 모르는 채
인간과 사회에 대한 푹 절여진 절망만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과장이 꿈에도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는데
그건 내가 내 수준에서의 인생 역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인 나는 인정하기 싫어했던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동안 여러번에 걸쳐
스스로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과장의 '공헌'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유는:
첫째 내가 병들고 아팠던 시간을
되돌려 보고 싶지 않고
둘째 과장이라는 인간(형)이 내게 무슨 일을 했다고도,
작디작은 관계성마저도 부인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강도 높은 시련을 빠져나온 후에
흔히들 말한다.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혁신/시켰는가를.
그것을 통과하는 동안 자신이 내린 선택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바람직하고 옳은 것이었는가를.
그렇다. 때론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남에 의해- 내 경우 귀신을 보면 봤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과장이고, 그의
시기, 질투와 아집, 탐욕으로 인해-
왜냐 하면 음흉한 과장이 ‘집적거리고’ 나서
의도치 않게 나는
나는 최근까지
한동안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시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됐을 뿐,
‘그 시간이 내게 한 일’ 자체는
대단찮다고 생각해 왔다.
그저 내 주위를 금방
좋은 사람,
즉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로 채우는 데 치중했다.
‘또라이를 한 번 만나서 빼앗긴 활력과 행복감을 만회하려면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을 수없이 만나야’ ( ‘또라이 제로 조직’, 로버트 서튼, 49쪽) 했다.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리고
‘행복나무’님께서 브런치에 문구를 담으셨다.
https://brunch.co.kr/@07d4fea261fc48a/647
세상 사람들 중 30퍼센트에 관한 글이었다.
평범한 진실 같이 읽히면서
‘피해 의식 없는 피해’를 입고 있는 내게 쏙 들어온다.
그렇다.
30퍼센트가 나를 싫어하고(아마 이유도 없겠지), 그게 너무 힘들었을 땐 미처 보질 못했는데
또 다른 30퍼센트는 나를 감사하게도 좋아해 줬다.
나는 낫고 싶었다. 그리고
내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길 원했다. 그래서 난,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한 30퍼센트를
지금까지 최선이라고 믿어 온
일의 방식을 그 때 같이 다 버렸다.
그리고 나니 점점 더 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과장'들이여. 조직 내 '또라이'들이여.
그로 인해 내가 만약
나 특유의 열정과 집중력으로
세상을 다시 배운다는 마음가짐과
역시 새로운 것에 대해 내가 본연에 가진 적성(적응성?) 등으로 인해
과장이 준 것을 몇 배로 튀기고 볶고 지지고 하여
가성비를 극대화하여
삶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을 갖게 되었으니
망정이지.
내가 만약 사회생활 초년생이었거나
가슴이 많이 아파서
이기지 못할 정도의 고통에 승복한 순수 청년이었거나
만약 내가 울고불고 이사람저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손을 내밀어야 했을 정도로
자신을 믿지 못하였었더라면
‘정신 활동에 장애가 생길 가능성’과
‘괴롭힘이 계속되면 피해자가 또라이로 변할 수 있음‘(’위 책, ‘또라이 제로 조직, 74쪽)을
어떻게 회피할 수 있었겠는지, 아찔한 일이다.
'과장'에겐 "No Thanks." 어림없다.
자신이 한 일의 크기를 짐작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한 경력은
이제 과장 본인의 몫이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나오고
직장이기 때문에 다녀야 하는 사람들은 힘들어 했다.
수면 장애, 무기력, 울화, 불안 등 증세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과장'들은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딱 잡아 떼는 데 매우 빨랐다.
그러나 ‘과장’들, 즉
로버트 서튼이 ‘공인 또라이’라고 지칭한 자들은
나같은 피해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보복을 모색하거나
징계를 주장하면서 무능함을 입증하려고 하고
이구동성 피해 보상을 요구하거나, 혹은
2차 피해를 염려해 그 모든 걸 삼킬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지 퇴직할 때까지
혹은 퇴직한 이후에도
이건 스스로 남긴 오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브런치의 시작도 어쩌면 내가
모종의 ‘생산자’로
위치를 바꾼 일이었다.
언덕 아래에서 위를 보면
절대 알 수 없는 일. 그건
저 너머에선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이다.
올라가기 싫은 맘을 달래고 올라갔을 땐
십중팔구 올라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경험치가 쌓이면 자꾸 오르게 되곤 한다.
나는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두려울 것은 많지 않았다.
어차피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마음 가는 대로 도전해 보고 싶었다.
각종 사건 사고들을 통해서
나를 까닭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배척했던,
커튼 속에 숨어서 모의하고 작당하는 사람들에겐
완전하게 질려 버렸다.
그럼에도 사람을 좋아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천성은 버리지 못했다.
‘바뀌지 않아도 지낼 수 있는 상황’(위 책, 시이하라 다카시, 98쪽)이었다면
아무리 내가 바뀌어야 함을 알고 있었더라도
안주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과장’들의 따돌림이 무섭게 나를 몰아쳤고
나는 조직 내에서 그럭저럭 목소리를 내고
남들 눈치 보고 인정받으며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위안하면서
다른 선택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삶을
아픈 다음에 포기했다.
매일 매일이 선택의 연속이면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것(Wants)과
내게 필요한 것(Needs)을 좇아
틀고 바꾸고 생산하는 루틴을 생각하면
오는 아침이 반갑다.
그들 ‘또라이’ 들:
상사 같지 않은 상사와
동료도 아닌 동료들을 만나서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길 바랬던 중증의 내가,
‘일꾼’이기를 자처했던 내가!
가장 잘 할수 있다고 생각한 그 /일/이 아니라,
서툴고 실수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매 순간 떨리는 일을 선택했다.
이리로 올 때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물론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여길 때까지
나를 못 살게 군 그들이
무슨짓을 해도
더이상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온 것만 같아
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뭘까? 그 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