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경험.
어느 날이었다. 차출되서 2인/3인 1조를 이루었다.
하필 2인이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사원이었다.
그런데 구면이라고 하기엔 아는 것이 없었다.
문제는 그가 한 마디도, 눈인사 한 번도 없이
핏기 가신 얼굴로 일만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2인 1조 1인이었단 것이다.
두어시간이 흘러 그날의 미션이 클리어되어 가는
시간까지 그는 초지일관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는 왕따 피해자이기 때문에
지금 즐거운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 때의 기억이 서린 시선으로
지금의 생활을 운영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잊었다고 해서,
나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 때 그 기억이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위의 사람은 비록 나와 서로 떨어져 앉았지만
그래도 한 개의 오피스에서, 두 시간 동안, 작업을 했다.
처음엔 귀에 이어폰을 낀 채로 그가 인사를 '거부'했고 업무 지령을 받은 다음에는 자신만의 필살기(?)로
하루의 파트너인 나를 무시한 채 자기 할 일만 하면서 묵언한 동안, 내 머리속은 엉망진창이 됐다.
안 좋은 기억이, 나는, 많은 사람이다.
그가 그것을 알 리는 만무했다.
다만 그는 그 날 타인에게 말을 걸기 싫었거나, 심하게는 내가 그에게 있어선 말조차 걸기 싫은 상대였다.
작업을 해 나가는 동안 내 머릿 속에서는 난리가 났다.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인사를 안 하지?
내가 저 사람을 다른 사람과 착각해서 (안면 인식 실패로) 말을 걸다가 흐지부지했던 게 기분 나빴나?
그것 말고는 다른 접점이 하나도 없었는데
왜 나한테 이러지?
무슨 '소문'을 들었나?
선입견이 있었을까?
아니 지금 다른 팀 사람과는 이야기한다는 거 아냐?
그럼 나한테만 인사를 건너뛴다고?
일에 착수하기 전에 간단히 인사라도 나누는 게
에티켓 아닌가?
나와 한 조가 된 것이 마음 상했나?
어쩌다 한번 하는 일일 뿐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여기까지가 1단계였다.
다음은 다른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애써서 지우려고 했던 얼굴과 그들이 한 말들이
낱낱이 떠오른 것이다.
과장이 가장 많이 생각났다.
“내가 성대리를 가만히 둘 줄 알아?"라고 했던 표독스러운 말과, 과장의 평소 행동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지금 그가 자신은 잘 못 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자신이 되려 피해자인 연 한다는 전언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A부터 Z까지라도 열거할 수 있었던, 가해자이면서 가해하지 않았다고 아마도 평생동안 우기고 살아갈 수 있을 사람들의 면.면.들...
그렇게 ‘생각’이란 것이 없어지지도 않고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체험하고야 말았다.
이름도 성도 잘 모르는 상태의 어느 사원과의 파트너십이 뭉개졌다고 해서
내가 왜 이다지도 기분이 가라앉고 과거의 시간을 헤매게 되었을까.
그 날 그는 그랬다. 내가 비호감이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나와 같이 작업을 하게끔 편성된 것이 몹시 부당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그 자신의 문제이다.
나에게 자신의 나쁜 기분을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라도 나에게
'안녕하세요?'나 '고생하셨습니다.'와 같은 형식적 인사를 건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말을 한 마디 걸지도 않았고 작업이 끝나자 휭 하고 작업물만 들고 나가버렸다는 것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작업자 성명란에 각자 성명을 기입하여야 했을 때는 내 등에 손등 노크를 했다.
나는 그가 사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단 것도 그 날 생각이 났다.
그 때도 그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폰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홀로 식사하고 있었다.
혼자 식사한다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안 된다.
다만 누군가와 같이 일을 수행하게 됐을 때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했는데 그는 하지 않았다.
정색을 한 그와 한 방에 앉아 일을 본다는 경험은
나의 모든 불쾌한 경험담을
모조리 다 수면 위로 가져와 늘어놓게 했다.
그러기에 그 두어 시간은 충분히 길었다.
그는 몰랐을지 모른다.
내가 그의 냉랭한 태도에 처음엔 주눅이 들었고
나중엔 뒤숭숭한 감정에 압도되었으며, 결국은 화가 나는(upset)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까?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은
학교폭력이나 직장 내 따돌림의 피해자일 수 있다.
지금 내가 파트너로 일하는 사람은 어제 오래 사귄 연인의 이별 선언을 듣고 밤새 통곡하다 간신히 출근한 동료일 수 있고, 전세 사기의 피해자로 임차권 등기나 경매 신청 절차를 알아 보아야 할
긴급 지원 대상자일 수 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은 갑작스런 사고나 가족의 발병으로 자기 마음을 추스리기도 어려운 사람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근로 소득이 그의 전부나 다름 없기 때문에 오늘도 직장에 나와 있는 것이다.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자기 마음이 힘들어 본 사람이라면 내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나는 나의 마음을 편안히 내려 놓고자 치료와 운동, 그 외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정녕 무겁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저 ‘안녕하세요’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