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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Jun 12. 2024

49. 나는 친절한 사람이 좋더라

- 사람들은 자기 자신 이외에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경험.


어느 날이었다. 차출되서 2인/3인 1조를 이루었다.

하필 2인이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사원이었다.

그런데 구면이라고 하기엔 아는 것이 없었다.

문제는 그가 한 마디도, 눈인사 한 번도 없이

핏기 가신 얼굴로 일만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2인 1조 1인이었단 것이다.

두어시간이 흘러 그날의 미션이 클리어되어 가는

시간까지 그는 초지일관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초주검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기억이 사라지질 않아서



나는 왕따 피해자이기 때문에

지금 즐거운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그 때의 기억이 서린 시선으로

지금의 생활을 운영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잊었다고 해서,

나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 때 그 기억이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위의 사람은 비록 나와 서로 떨어져 앉았지만

그래도 한 개의 오피스에서, 두 시간 동안, 작업을 했다.

처음엔 귀에 이어폰을 낀 채로 그가 인사를 '거부'했고 업무 지령을 받은 다음에는 자신만의 필살기(?)로

하루의 파트너인 나를 무시한 채 자기 할 일만 하면서 묵언한 동안, 내 머리속은 엉망진창이 됐다.


안 좋은 기억이, 나는, 많은 사람이다.

그가 그것을 알 리는 만무했다.

다만 그는 그 날 타인에게 말을 걸기 싫었거나, 심하게는 내가 그에게 있어선 말조차 걸기 싫은 상대였다.



작업을 해 나가는 동안 내 머릿 속에서는 난리가 났다.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인사를 안 하지?

내가 저 사람을 다른 사람과 착각해서 (안면 인식 실패로) 말을 걸다가 흐지부지했던 게 기분 나빴나?

그것 말고는 다른 접점이 하나도 없었는데

왜 나한테 이러지?


무슨 '소문'을 들었나?

선입견이 있었을까?

아니 지금 다른 팀 사람과는 이야기한다는 거 아냐?

그럼 나한테만 인사를 건너뛴다고?

일에 착수하기 전에 간단히 인사라도 나누는 게

에티켓 아닌가?

나와 한 조가 된 것이 마음 상했나?

어쩌다 한번 하는 일일 뿐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여기까지가 1단계였다.

다음은 다른 단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애써서 지우려고 했던 얼굴과 그들이 한 말들이

낱낱이 떠오른 것이다.

과장이 가장 많이 생각났다.

“내가 성대리를 가만히 둘 줄 알아?"라고 했던 표독스러운 말과, 과장의 평소 행동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지금 그가 자신은 잘 못 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자신이 되려 피해자인 연 한다는 전언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A부터 Z까지라도 열거할 수 있었던, 가해자이면서 가해하지 않았다고 아마도 평생동안 우기고 살아갈 수 있을 사람들의 면.면.들...

그렇게 ‘생각’이란 것이 없어지지도 않고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체험하고야 말았다.


이름도 성도 잘 모르는 상태의 어느 사원과의 파트너십이 뭉개졌다고 해서

내가 왜 이다지도 기분이 가라앉고 과거의 시간을 헤매게 되었을까.


그 날 그는 그랬다. 내가 비호감이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나와 같이 작업을 하게끔 편성된 것이 몹시 부당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그 자신의 문제이다.

나에게 자신의 나쁜 기분을 전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가 어떤 기분이었을지라도 나에게

 '안녕하세요?'나 '고생하셨습니다.'와 같은 형식적 인사를 건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말을 한 마디 걸지도 않았고 작업이 끝나자 휭 하고 작업물만 들고 나가버렸다는 것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작업자 성명란에 각자 성명을 기입하여야 했을 때는 내 등에 손등 노크를 했다.


나는 그가 사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단 것도 그 날 생각이 났다.

그 때도 그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폰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홀로 식사하고 있었다.

혼자 식사한다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안 된다.

다만 누군가와 같이 일을 수행하게 됐을 때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했는데 그는 하지 않았다.

정색을 한 그와 한 방에 앉아 일을 본다는 경험은

나의 모든 불쾌한 경험담을

모조리 다 수면 위로 가져와 늘어놓게 했다.

그러기에 그 두어 시간은 충분히 길었다.


그는 몰랐을지 모른다.

내가 그의 냉랭한 태도에 처음엔 주눅이 들었고

나중엔 뒤숭숭한 감정에 압도되었으며, 결국은 화가 나는(upset)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까?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은

학교폭력이나 직장 내 따돌림의 피해자일 수 있다.

지금 내가 파트너로 일하는 사람은 어제 오래 사귄 연인의 이별 선언을 듣고 밤새 통곡하다 간신히 출근한 동료일 수 있고, 전세 사기의 피해자로 임차권 등기나 경매 신청 절차를 알아 보아야 할

긴급 지원 대상자일 수 있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은 갑작스런 사고나 가족의 발병으로 자기 마음을 추스리기도 어려운 사람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근로 소득이 그의 전부나 다름 없기 때문에 오늘도 직장에 나와 있는 것이다.






마음의 무게가 짓누를 때는

헤어나기가 어렵다.



마음은 들고 있기가 무거운 무엇이다.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자기 마음이 힘들어 본 사람이라면 내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나는 나의 마음을 편안히 내려 놓고자 치료와 운동, 그 외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정녕 무겁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웃으면서, 가볍게 인사할 일이다.

그저 ‘안녕하세요’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그런, 착한 사람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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