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같이 가지 않는다.
글을 쓰려고 할 때면
이런 마음과 이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글로 썼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할지
걱정이 앞선다.
사실 글을 쓰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어떤 날은 ‘오늘은 도저히 마인드 셋이 안 되고
글쓰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느껴져서
수요일 저녁 8시와 일요일 오전 8시로 작정한 글 발행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발행’ 버튼을 누르고 있게 되는 일이 47회가 있었다.
48번째 오늘은 ‘시작이 반’이라 했겠다,
다시한번 마음을 털어보려고 한다.
한 쪽 사람이 모든 면에서 앞선다면
다른 한 사람은 끌려가는 수 밖에 없다.
성별, 나이, 경력, 재산도 차이가 나겠지만
무엇보다 정신력의 우세는
인간관계의 상하좌우를 틀어놓는다.
오죽하면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이 나오며
한번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아마도 또 당할 위험이 높을 수 있다.
사람을 만나서 일도 같이 하면
사람이 혼자 있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일의 능률이나 전개도 빠르고 좋아진다.
그래서 일하다가 눈을 맞추고 마음이 맞으면
덤으로 사람을 잘 알게 된다.
그런데 거꾸로의 경우, 즉 일하던 괸계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맞지 않는 부분이 커져서 사이가 틀어지면,
관계도 일도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사람을 잘 만나랬지.’ 는 뒤늦은 후회일 뿐이다.
자기한테 선택권도 없고 배분도 불리하며
상대가 나를 고려하지 않고 일을 갖고 온다면
그걸 진작에 알아채더라도 관계가 한번 설정되면 잘 빠져나오질 못한다.
그게 눈을 가리고 안 보이게 만드는 관계의 속성인데
거기에 믿음이니 애정이 끼어 있으면 영낙 없다.
정신력에서 ‘을’인 사람은
자신이 얻어 가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는 걱정에 불이익한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래서 손해를 키우는 것이다.
‘액자 효과’를 사진 찍기에 쓰면
사진은 잘 나와 보이지만
내가 사진을 찍을 때
주로 차창이나 집의 창문을 활용(?)한다는 걸 알았다. 아래는 커버 사진이다.
모두 창문 틀을 사용해서 사진이 액자에 들어간 것처럼 꾸며져 보인다. ‘액자 효과’라고 말한 것은 심리학 용어의 ‘프레이밍 효과’를 떠올려서이다.
물이 반 컵만 남았다고 할지, 물이 반 컵이나 남았다고 할지에 관한 문제 말이다.
표현 방식에 따라, 즉 어떤 틀에 넣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결정이 달라진다고 했었다.
틀이 좋으면 사진 속 픙경도, 관계 내의 사람의 상태도 좋아 보인다. ‘우린 이렇게 하기로 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그것은 강한 사람이 정해서 끌고 가 버린다. 사실은 틀을 빼고 봤을 때 풍경도, 사람이 실제로 갖는 느낌도 별로일 수 있다.
묻는 사람은 대개는 문제 발생 요인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A도 해 주었고 B, C도 제공했으며 결국 나같은 사람은 없다.”는 게 요지다.
그걸 듣는 마음의 약자는 ‘그래 힘들었겠다.’라고 생각하며 불만을 집어넣는다. ‘말해 봤자 통하지도 않아.’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잘 액자에 담아 포장하면 좋은 그림처럼 보인다.
물론 좋은 그림이 아니다. ‘좋은 그림이에요.’라는 생각을 하면서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긴 인생에서 짧은 만남을 수없이 되풀이한다.
사람이 사람을 버릴 수 없어서 끌고 가는 경우도 있고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속고 만나는 경우도 있다.
내 마음과 똑같다면 무슨 문제도 없겠지만
대개 인간은 자신의 셈법으로 인생을 살고 사람을 다룬다. 강하게 어필하면 누구든지 물러나려고 한다.
원치 않는 관계란 대부분이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타난다.
“내 생각은 안 해?”라고 뒤늦게 물었지만
답은 벌써 나왔다. 안 한 것이다.
혼자 처리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불리한 관계를 양산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힘들어진 면은 더 많지 않았는지
물어본다. 내가 나에게 꼼꼼히 묻고 진단했을 때
“너에게 할 말이 없다.”고 말하고 자신의 울타리로 돌아간 사람들이 내게 준 것 그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제 좀 든든하다.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니까 그런 것 같다.
(오늘 글쓰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