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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Jul 24. 2024

61. 남의 열정을 뺏는 사람들이

- 많으면 많을수록 현장 분위기는 나쁘다(다다익*)


아침에 유명 유튜버의 방송을 들었다.

‘운칠기삼’이냐, ‘기삼운칠’이냐.

방송은 ‘기삼운칠’이라는 의견이었다.

‘준비하고 기다려라. 기회는 반드시 온다.’ 뭐 그런,

남들에겐 스칠 일도 나에겐 다 깨달음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실패를 하지 않았던 사람일 경우가 많다.


너무 큰 실패,

인생 전체를 갈아엎어야 하게 만든 왕따 사건 이후

새로운 나만의 조절점을 찾다 보니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고

듣는 말마다 ‘이게 답인가?’. 찾게 된다. 그리고

이제 뭔가가 그렇게 두렵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건

그건 두렵지 않은지?



오늘 하루가 길다. 그 와중에

뭐 뭐 하기로 한 일정을 잡아 두면 금새 돌아온다.

그러다 보면 한달이 다 가고 한 해도 금방 간다.


“뭐 하고들 사세요?” 이 물음에


뭐라고 답 하세요?  ~ 답은 말이죠~각자가 달라도

하루 하루가 내 열정을

송두리째 태운다면 그럼 된 거죠~


저는 공무원이고

제가 생각하긴 평생 봉직했고

공무상요양 승인 신청을 거절당해서 두 번 쓰라렸어요.

제 자신을 위해서는, 매일 밤 야근하고

사무실을 불 밝히다가 문 잠그고 귀가하는 생활이

제게 득을 주었을까요?

아시겠죠? 결과적으로 피폐해지고

개인의 유익은 제로에 수렴했다는 것.


그러니까 저 개인은 일을 놓지 않고

매달렸던 시절보다,

많은 병원 문턱에서

자존감이 무너지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나마 건강보험이 잘 설계된 대한민국에서도

소득의 몇 퍼를 의료비로 쏟아부어야 했지만

해도 되지 않는 일에 스스로를 갈아 넣고 설상가상 왕따되는 ‘말도 안 되는 일’로부터 해방된

소득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안 그렇겠어요? 저 개인에게는요~


그러나 ‘성대리’였던 시절, ‘성대리’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사업들, ‘성대리’가 갈고 닦아 낸 길은 아무도 뒤에 올 사람이 없고 그럼으로써 끊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호응했던 일을

다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성대리’가 그것을 펼치려다가 고립되었음을

이 계통에선 다들 알고 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는 안전 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업종의 종사자들에겐 옳다.

그러나 예산이 있고 핵심 목표(Big idea)가 있으며

불특정 다수를 향하는 공공의 행정직에게는 무엇이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말과 같다.



현장에 그 답이 있다.



일을 글로 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은 똑같다.

법에 저촉되지 않고 내가 해 먹은 ‘밥’을 토해 내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그들이 전문가라 자처할지언정 ’칼을 든 강도’와 다름 없다.


조금만 세상에 부딪혀 사람을 통해

일을 도모해 본 사람은 안다.

사람이 얼마나 상/중/하 질을 떠나 여러 ‘질’인지!

자기는 물어낼 게 없다는 생각으로

앞도 뒤도 재지 않고

‘내 잘못을 네가 입증하세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믿는 구석’이 있겠다.


그럼 뭘 하나. 문서만 만들고 그것을 ‘정책’이나 ‘대책’이란 이름으로 쏟아내는 사람들이란 현실에 발 붙이지 않고 오직 ‘선전과 선동’에만 열을 올릴 뿐.


한 사람의 사업 고안자가 일선을 떠나고

그의 아이디어가 수 십 번 실적을 내고도

지폐 계수기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작업자들 손에 사장되어 버리면,

시민 그룹 일원에서

예정대로였더라면 누릴 수 있었던 혜택을,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그들에게 호의적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정상적으로 제공받을 기회를 잃고 만다.

영문도 모르면서.


만약 지난해나 지지난해 있었던 사업이

나름의 만족도를 내고도 끊겼다면

그 배후에는 한 두 명의 업무 추진자(들)가

죽을 것 같은 고립과 따돌림의 공포에

현장을 이탈할 수 밖에 없었을 사정이 있었을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특히나 잘 견디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렇게 됐을지 모른다.


모든 것은 현장에 답이 있다.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남의 열정을 뺏어도 끝내 갖지 못한다.



동물실험 또는 실험동물에 관한 브런치 글을 읽었다.


https://brunch.co.kr/@d77a86680ec344a/535


나는 현재 펫을 키웠거나 키우지 않고 있어

그 위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지냈다.

특히 흔히 구매하는 화장품의 ‘테스트(시험 검사)

완료’ 라벨을 보고 그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글을 읽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나는 동물과 친하지 못하고

간혹 지인들의 펫에게 예뻐도 다가가기 어려운데

그래도 말 못 하는 동물들이라고 해서

학대당하고 죽어가는 개체들이 수 많이 있다는 게

며칠 내 잊히질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같이 밥을 나누고 숟가락을 놓던, 그렇게

눈길을, 발걸음을 맞췄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성대리’가 ‘시세가 빠졌다’고 해서

성대리라면 사회적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그것을 노리고선

왕따를 자행하고 뒤돌아 버렸을까.


나는 특히 마음이 여려서

동물들이 안타깝고, 왕따도 당했을까?

아니면,

왕따 피해를 입어 봤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걸까?

‘닭인가, 달걀인가 무엇이 먼저인가?’

이것은 인류가 답을 정하지 못한 질문이고,

나도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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