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은 ‘제눈에 안경’. 그러거나 말거나 할 것.
‘대도시의 여행법’을 연재하고 계신 BOX님이
최근에 파리 루브르에 관해 이렇게 쓰셨다.
“길을 잃어야 행운”이라고.
https://brunch.co.kr/@box-freeman/412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인생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노래(4MEN) 제목처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꼭 연인 관계만이 아니며
연인 관계를 포함한 만남에 해당한다.
열심히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열심히 일거리를 찾아 다녔다. 사람의 ‘민낯’은 생얼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여기서는 그의 어떤 ‘부정적인 면’이라고 하겠다.
최근에도 나는 굳이 피하지 않고 온/오프에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 중이다.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서로 안 지가 얼마 안 된 경우에도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고 자기 입으로 선언해서 다짐을 받아 두듯 하는
사람들이 더러, 아니 ‘많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돈도 지위도 가정도 탄탄하여
자식들도 잘 컸으니 이제 애인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면 나일지라도 받아치기가 쉽지 않다.
‘돈도 지위도 다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저 할 말이 없다는 심정이 된다.
과장이 내가 자기를 디스했다면서
나와 ‘업’을 떼어 놓아 버려서
사람도 무섭고 일을 잡기도 두려웠을 때
나는 수없이 반복하여
‘내가 길을 잃었구나.’라고 자탄했었는데,
할 말이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
'이해도가 처지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려면
'퇴사’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궁색함이 더 궁하게 느껴졌었는데
BOX님이 쓰신 글귀를 보고 든 생각:
‘아직 내게 ‘행운’이 전부 다 온 것은 아니었다.’
길을 잃었으니까.
‘최신 효과’라고 하죠. 옆에서 전화번호 불러 주면
010-0000-@@@@ 중에서 뒷자리 @@@만
생각나는 현상 말이에요.
사람도 얼마나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가.
좋은 사람, 고마운 이전 사람도 기억할 테지만
결국엔 최종적으로 내가 그를, 또는 그가 나에게
낙인을 찍은 일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
기억이란 게,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구조이다.
그때 내가 쓴 방법은 기억을 ‘초기화’ 한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혹은 과장과 같은 빌런들을 만나기 이전으로 돌린다.
잘 안 돌아가고 삐걱거리면서
몇 번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더라도
결국은 초기화가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내가 살 수 있는 구조임을 나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일을 겪고도
계속 불행한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다면
내 소중한 ‘Life’를 계속해서 그런 짜증 유발자들에게
‘퍼 주고’ 간다는 말이 된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자주 썼던 말인데,
우리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그 누군가는 해 냈다. - 나를 왕따시켰거나
나를 제외하고 자기 소원을 성취했지 않나.
그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들 생각대로 (잘) 산다.
나라고 해서 지치고 용기 나지 않는 날이 없을 수 없다.
요즘 같이 습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생각해서
손에 잡은 우산을 놓지 않고 있노라면
우울감이 밀려 든다.
이 때 나의 방법은: 내 영혼의 음식을 만들던지,
사 먹던지다. 요리 솜씨가 일천한 나에게 쏘울 푸드는
감자 요리다. 감자는 껍질을 벗겨낼 때부터
삶아서 으깨거나 썰어서 볶거나의
그야말로 지지고 볶는 전 과정에서
그 향과 그 맛이, 식감이 나를 위로해 준다.
언제부턴가 지치고 힘들 때 감자를 찾게 됐다.
물론 감자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일 년 여 전에 그 사건으로 육 개월 정도 굶다시피 살았고, 약을 먹으면서는 되려 폭식증 비슷한 상태를 경료*했다. ‘살면서 내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를
깨달았을 때는 모든 일이 지나간 뒤였다.
*경료: 정해진 절차를 거쳐서 완성함 또는 마침.
그후 나는 음식의 가치, 매력, 중요도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역시 지나쳤던 것일까?
건강 검진에서 ‘당’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기준치를 가뿐히 넘겨 줬다. 역시 지나쳤네.
나이에 비해 좀 빨리 경고등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결과지를 받아들고서 나는 이랬다.
‘어쩌겠어. 이것도
또 ‘다뤄’(treat, handle) 줘야겠다.‘고,
그리고 꾸준하게 할 일이지,
‘욕심 내면 그르치기가 쉽다.’라는 옛 말도 생각났다.
내 문제를 내가 다뤄 보고 그것을 뛰어넘을 거라면
어차피 ‘내 일’이다. My own business.
안경이 저마다의 눈에 다 다르듯이
내 삶에 다른 누가 수저를 놓을 수 있는가.
나는 사람들이 어떤 시험을 받는 순간에, 질문을 당하는 위기의 순간에, 갈림길에서 정확히
자신의 가치관, 자기 철학을 드러내는 걸 봐 왔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은 즉각적으로 방어 기제를
작동한다. 그 때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씁쓸한 생각이 들곤 한다.
욕심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밀어 부치곤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 너무 음식 욕심을 냈던지
가족력에 없는 지병이 고개를 내민다.
‘음식 섭취 좀 줄이자!
그만 먹고 다른 욕심도 줄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