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시간
자리에 앉아서 이메일을 작성하는데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의 패배를 인정하여야 할 때,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내 힘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 때였다.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살아간다는 게 무척이나 형편 없는 일인 것 같이 느껴졌다.
마음 속 답답함이 차 올랐고 눈물이 났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살아온 시간을
책 한 권으로 표현한다면
대부분의 시간은 페이지 너머로 잊혀졌다.
잊고 살아간다는 일이 내게 많은 내성을 길러 주었다. 사람이 할퀴고 간 상처 같은 것들을 잊기 위해
그 시간의 페이지 같은 것을 찢어버리고 걸어왔다.
원래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러므로 내 '책'을 읽는 사람은 제한되 있었다.
또 내 '책'을 읽으라고 권유할 만한 사람도 곁에 없다.
도저히 혼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가족? 친구? 친지? 애인? 이 아니다.
내 이야기를, 나의 비참함을 숨김 없이 이야기한다는 게 힘들다.
이야기하다 보면 다소 가식이 있고 꾸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간절하게 무언가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좋게만 바라보려고 해선 안 된다.
간절함이 지금의 절박한 상황에서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조짐만 보이더라도
나의 마음은 풀어지고는 했다.
조그마한 돈이 들어올 예정이 있으면 돈이 무섭지가 않아져서 다시금 돈을 써 버리게 되는 식이다.
결핍과 부족의 총량이 극대화되어야 할까?
나는 생각한다. 간절함의 기준은 내가 '그 일'을 생각할 때 '어서, 당장, 했으면! (혹은) 거기에 가 봤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두근거려야
간절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리디아 고처럼
자기 분야에서 MVP가 될 수 있다. 파리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메이저 대회까지 제패한 골프선수 리디아 고를 보면서 ‘나도 그 어떤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부럽다.
허나 핑계가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침형 인간'은 정말 못 된다. 만약 저녁 8시에 한강에서 치맥을 하자고 벙개가 들어오면 '갈까?'한다.
그런데 새벽 5시에 북한산에서 등산하자고 제안이 들어오면 '못 가지.' 한다.
그렇더라도 나는 여전히 내가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에 오지 않은 미래를 구상해 보고 현재의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그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 보길 좋아한다.
너무나 고민이 됐다.
내가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일한 것이 흠이 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사람들은 '공무원'이라는 직업군에 대해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는 여러 가지인 것으로 안다. 그렇게까지만 말하련다.
어쨌거나
나에게 배어 있는 방어적인 생활 습관과
내가 겪은 좌절과 실패의 경험치란
나를 결코 용감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반복성 부정적 사고(Repetitive Negative Thinking)’로, 일을 하면 왜 하냐고 하고, 일을 오래 하면 그만 하라고 강제 했던 사람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반복적으로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겪는 것은 그런 부정적인 태도가 전염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나에게도 그런 부분이, ’한번 해 보자'가 아니라 '해 봤자 되지도 않을 걸?', '어느 세월에 하겠어?'와 같은 태도로 배어 있다.
*출저: 시사저널(2021.11.25 )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586
그런데 '이렇게 살기는 싫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와 같은 기분에 압도된 어느 날 나는
현재의 내 상태가 내 연령과 경력에 맞춰 적절히 안분 배당(평등 배당)된
행복과 불행의 혼합이란 생각에서 깨어났다.
나는 무엇을 잘 하고 있지도 않고 무엇을 잘 할 수도 없다.
나는 스스로 손 대는 일마다 엎어지는 투자자 같기도 했고, 회사 생활 부적응자 같기도 했다.
혼란이 계속됐다.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하면 되겠는지에 관한 생각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과거를 개인적인 초깃값으로 삼고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스마트한 선택들’, 롤프 도벨리, 75쪽) 한에는
‘공무원’의 길에 들어선 20대 때의 선택을 바꾸지 않고선 삶을 바꿀 수가 없는 것처럼 뻣뻣해져 있었다.
나는 오랜 동안 지식을 책에서 찾았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도 지침과 매뉴얼을 찾아서 그를 기반으로 안을 만든 후 상사 의중 체크하고 진행했다.
반면, 날이면 날마다 세상엔
'해보니까 좋았다. 가 보니까 다시 오고 싶어졌다.'와 같은 이야기들이 유튜브의 다양한 채널에서 쏟아진다.
시키는 사람이 없는 세상,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세상에서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살아가려면
단조로운 이 밭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그것을 한창 생각할 때 ‘거대한 배의 향방(‘물욕 없는 세계’, 스가쓰케 마사노부, 84쪽)’이란 말만 들어도 울컥했다.
내 인생이 흘러오는 동안 오로지 몸 담았던 공무원의 세계에서 따 당하고 ‘아픈 건 네 잘못’이라는 공단과 인사혁신처의 지연, 무시를 겪은 다음 어쨌거나 살아있는 나는
길을 건너 오니까 내가 걷던 그 길이 보인다.
전문가가 있다면 그 도움을 받는 게 답이다.
쓰러진 경험은 이제 충분하다.
성공 경험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제까지의 스토리는 밋밋했다.
좋게 하자. 말할 수 있게, 듣기도 좋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