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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립스틱 짙게 바르고 Sep 01. 2024

72.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면

- 벗어 두어라.


한동안 내 것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일과가 눈 깜짝하면 점심이고 또 저녁이 됐다.

분명히 바쁜 일이 없는데 시간 확보가 안 되는 거다.

쫒기고 있었다.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진척이 없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



옷을 사러 갔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주저하고 있는데 “이게 괜찮잖아요!”라며

주위에서 권하면 ‘그런가?’ 할 수 있다.

그런데 계속 잘 입을 확률은 반 반.

옷 한 벌을 사도 이런 옷이 이래서 필요한데

원하는 가격대와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등등

미리 생각해 보면 자기에 대해 여러가지를 알게 된다.


사람은 남의 말을 듣고 살지 않는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더라도 자기

계획 안에서 희생 봉사 하는 것이다.

남이 나를 이끌고 가거나

그 어떤 연령, 경력, 재력, 지위로 자신이 리드한다고 했을 때 내가 백 프로 만족하는 일은 갈수록 없어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여러가지 좋은 일이 많으면

계속 함께 할 거다. 그러나 만나서 일방의 기호나 일방의 사정에 따라서 다른 일방이 계속 맞춰 주고 자신의 의지마저 꺾고 따라 가야 한다면 분명 균열이 온다.

사람 누구나 머리 속에 ‘사이렌’이 울리는 순간이 있다. ‘어! 이건 내(가 원하는 것)가 아닌데?!’라는.


나는 그럴 때 좋은 말로 하면 ‘관계가 틀어질까 봐’ 내 입을 틀어막았다. 머리 속에 울리는 사이렌을 껐다.






남의 생각이 내 생각 되지 않더라는



그렇다. 이것은 남의 생각이 내 생각 되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과 그것을 따라 하는 것은 별개다. 생각 차이가 컸을 때는 더구나 한계가 있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생각이 다르면

언젠가는 각각의 길이 갈려서 나타날 것이다.


혼자가 된다는 것의 두려움을 왕따 당하면 매일처럼 마주한다. 하루하루가 나의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다.

어쩌면 그것이 대인관계의 최종 결말인지 모른다.

사람은 만나면 헤어진다. ‘저 사람이 없으면 난 어떻게 살지?’했던 사람도 떠나보낸 후에 다시 잘 살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가르치는 사람들이

도처에 많이 있다. 거기에서 또 인간관계가 탄생하는 소모임, 동호회, 단톡방들... 그렇게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것이다. 좋은 인연이 만들어지고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 주는 사이들이다.


가르치고 배우고 한 일들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빠져 있는가.

나는 오랜 시간 ‘내 것’을 기다려 왔다. 남의 지식이나 남의 노하우도 나한테 들어오면 변화, 변형된다.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가졌’을 때라야

내가 아는 것, 내 소유가 된다.





편해지면 안 되는 게 사람 관계



단 한 번도 내가 사람에게 함부로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한 사람이 있었다.

친해진 것이다. 내 말을 다 들어주리라고 마음을 놓자 편해졌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폭풍처럼 거칠고 바람처럼 때렸다. 위로를 원했다.

나의 말과 나의 마음이 날을 세워서 그에게 다가갔다.


부부끼리 친구끼리 존대말을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그래?’라고 했지만 그렇게 했음직 하다.

사람은 편해지면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편하게 대하세요.’라고 말하지만 하나도 편하지 않은 게 낫다. 그리고 하나 더. 사람 관계가 무너지는 데에는

오래 참는 것이 이유가 된다.

어느 한 쪽이 또는 양방이 조금씩 조금씩 희생하고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참고 참은 게 봇물처럼 터진다. 그 때가 되서 종국이 오면

참고 맞춰 준 건 바보 짓이었어.’에서 ‘참고 여기까지나마 온 건 잘한 일이야.’끼지 스펙트럼 속에 내 생각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관계를 소멸해 간다.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하던 사람들도 모두 헤어졌다.

서로가 맞지 않는 옷을 입었던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갈 거야.’ 했지만 동업은 증오가 되고 상대방과는 소송 중이다.

강사에게 ’은혜‘를 노래하다가 그가 추천한 종목이

더이상 올라가지 않으면 멱살잡이도 예사다.

‘고통과 영광은 언제나 같이 있다.’(‘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해’, 허희, 67쪽)


인생은 혼자인 것인데 함께 하다가 혼자 해 나가려면

막상 두려움이 크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남의 생각을 좇아서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살아갈 수는 없겠다.

의견 차이는 소중한 것이고 마음의 상처도 잘 생긴다.

‘생각’이라고 말하면 거기에는 살아오면서 환경, 유전, 경험, 노하우,취사선택 습관에 의해 길러진 ‘가치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사주 관상’을 검색어로 친다고 하자.

많은 링크와 채널, 블로그들이 우후죽순 같을 것이다.

내가 믿고 본다면 다 걸르지 못하고 빠져 버릴 정도로.

나는 그 바다에서 나 혼자 걸어가고 있다.

이제까지 혼자였던 모든 경험이 보탬이 될 것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더 많은 것을

내게 보여 줄 것이다.


‘미적대지 말라, 타인과 얽힌 당신의 그 일을.’

(위 책, 71쪽)


너무 잘난 사람은 내 파트너가 될 수 없고

너무 힘든 상대는 내 짝이 아니었다고 할까.

모든 것은 내 수준에서

내 눈높이에서 조금씩 올려가는 것이 좋고

그러려면 홀로 지내는 시간을 즐겁게 맞이할 것이다.

황새를 따라가는 뱁새가 가랑이가 찢어진 이유가

내 것’을 살지 않고 욕심을 내서 그랬던 것이다.

남의 것’은 아무리 정보가 많고 커 보이더라도

감질만 나고, 작은 ‘내 것‘보다 더 층족하지 않으니

어서 하루빨리 ‘내 것’을 만들어 보자.

제 살을 깎아서 남을 채우는 것은 자부심을 잃는 일이고 그렇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으며


https://www.youtube.com/watch?v=9D4bFzuviZA

김필이 부른 김광석 곡. ‘너무 아픈 사렁은...’


원래는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사랑을 말한다. 남의 마음을 좇아 사는 것은 인정사정 없이 필패한다.


이렇게 답을 낸 적이 많았지만,

되돌아가고 되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다. 어떻든지 ‘괴롭고 아픈’(위 책 98쪽) 일이다, 헤어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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