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줄 아는 것이 된다.
되긴 할 것 같은 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일’이라든지 ‘OOO의 신’과 같이
그는 불린다.
답은 이렇다.
길은 멀고 하늘은 어둡다.
삶이 어제 토요일 날씨처럼 화창하기만 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안 그랬다.
돌아보니 부모의 말도 잘 안 들었던 것 같고
친구들도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렸다.
상사였지만 나를 엄청 괘씸하게 생각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한 이도 있으니
직장생활에서도 순순히 말을 들어 주지 않은 것이다.
왜였을까.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알고 보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다른 사람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이라든지 ‘OOO의 신’이 옆에 있고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결국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대부분 그 정도의 일은 한두번의 스트레칭이나
몇 일간의 음식 조절로는 되지 않는 일들이다.
즉, 난이도 최상에 속한다.
나는 ‘스트레스’에 크게 깨어지는 밸런스의 사람이다.
현재의 건강 상태를 자신하면 큰일 난다.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이 정도도
스트레스 안 받고 어떻게 월급 받아.”라는 말.
그러다가 스트레스 ‘흡수기’에 고장이 나며
몸이 크게 흔들렸고 원상회복이 불가능할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내가 선택했던,
내가 결정한 일은 수행한다.
그걸 포기하지 않고 해 내는 것이
내 삶의 ‘다음 이정표’를 보여 주는 스위치를
손에 쥐어 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좀 많이 열려 있었나 보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내가 웃었다고 한다.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경우를 감수했는데 맡겨 주더란다.
집착해서 쫒아 올까 봐 뛰었는데 돌아보니 나는 그림자도 없었더랬다.
나는 사람이 그저 좋았다.
화 내고 열 받고 내 맘 몰라 준다고 짜증을 내면
곁이 허전함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겪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에..,
대개들은 ‘본심’을 숨기지 않나 싶다.
말은 그래서 길어지고
들어 보면 숨기느라 바쁜 설명들이다.
“나는 이러이런 정도로만 너랑 지내고 싶었어.”라는 말은
자신의 양다리(이중 데이트) 생활을 정상으로 포장하려고 하는 말이다.
연애할 때 집에 들어가고 나서 연락이 없는 사람은
다 ‘사정’이 있는 것이고
나중에 사정을 다 알게 되면 깨지더라는 이야기다.
‘나는 그 출장은 가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에는 이름을 올리고 싶어.’라는 속마음에는 “과장님 제가 출장 올려 드렸습니다.”라는 멘트로 읽어 주면 편해 한다.
돈도 시간도 챙겨 드린 셈이니까.
가득 가득 차려진 밥상에 협의회 이름을 붙이면
“요건 내가 못 참지.” 하고 들러들 간다.
그러나 ‘협의’는 종전과 같이 아무것도 아무말도 진행되지 않는다. ‘먹고 끝난‘ 것이다. 심지어 불만과 불편을 잠재우려고 뷔페 식사를 동원해서 먹이고 끝나는 꼼수도 효과적이기까지 했다.
다들 알지만 빠지지 않게 만들면,
‘못 참지.’ 본능에 기대 버리면
말도 안 되게 어설픈 일들이 그냥저냥 돌아가게 된다.
건강이 ‘지켜 보아야 할’ 상황으로 떨어지고 나면
컨디션 관리가 제법 일이 된다.
요건 의사가 해 주는 것도, 같이 사는 가족이 알아 주는 것도 아닌 게 혼자의 영역이라서다.
여기서 주의할 건
‘세상에서 완전히 좋은 조건’부터 찾으면
결괏값은 ‘0(제로)’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그게 피구장에서 내 몸에 날아오는 공을 피하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찾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은
이다.
안 가 본 길을 가는 게 어렵지,
한 번 간 길은 그냥 내 몸이 알아서 간다.
스트레스가 무서워선지 어째도
늘 쉬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쉬는 법도 나날이 업그레이드되지 않는가.
쉬는 것도 해 본 사람이 잘 쉰다.
어려운 산도 넘어봐야 할 줄 알게 되고,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
또 넘고 또 넘는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퍼포먼스에 약하다.
안 해 보고 탁상위 논쟁에만 강해진 사람은 가려내야 한다. 나의 실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가라고 알려 줄 지도 모른다.
똑같은 내 설명에,
이번 주에 내가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나는 모두 ‘흡수’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변함없이 나는
내가 매일 하는 일을 제일 잘 할 것이다.
내가 많이 해 본 일을 나는 점점 잘 할 것이다.
내 손에 익으면 내 근육이 그 리듬을 기억할 것이고
나는 움직임조차 달라질 것이다.
피하지만 않는다면 삶의 풍파는
때로 상대방과 나의 결속과 연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울고 끝났다면
끝내 사람의 진심에 울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힘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힘든 일을 해 냈으면
좋겠다.
나도 힘이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