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보기.
전원 후, 아빠께서는 적응도 잘하시고, 컨디션도 점점 더 좋아지셨다.
재활시간도 전보다 늘어났고, 이제는 주말에 아빠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잠과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병원에 빨리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에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하나 내려놓은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대동맥수술 부위의 확인을 위해 시행한 CT검사를 진행한 후, 흉부외과에 협진을 의뢰하여 결과를 들었다.
"심장과 폐 쪽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수술부위도 이상 없구요.
신장 부근까지는 잘 아물고 있고, 복부 쪽은 아물 때까지 기다리면 되세요. 6개월에서 1년 주기로 추적관찰은 해야 합니다."
아빠는 내가 "아빠, 팔에 힘줘보세요!"라고 하면 팔에 힘을 주고, 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을 보여드리며 "아빠. 이거 따라 해보세요!"라고 하면 느리지만 곧잘 따라 하셨다.
나의 간절함이 통한 듯, 아빠는 나에게 그 어떤 세상에도 없는 희망과 기적을 보여주셨다.
주말에 아빠를 보러 가면 아빠는 늘 주무시고 계셨다. 왜 그런가 했더니 평일 아침 여덟 시 반부터 오후 네시반까지, 그리고 토요일 오전까지 재활을 받으신다는 거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동안, 아빠는 나아지시려고 혼자 열심히 재활을 받고 계셨구나..'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빠가 재활의지가 있다고 하셨다. 아직은 인지가 안되시는 듯 보였지만, 아빠는 분명 우리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재활을 받고 계신 거라고 생각하니 초인적인 힘이 생겼다. 그 어떤 것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주무시고 계시는 아빠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아지고 계시는 이 상황이 감사했지만, 아빠가 안쓰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빠는 이 상황을 알고 계신 걸까? 차라리 이런 냉정한 현실을 모르셨으면 좋겠다'라는 이중적인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믿기진 않지만, 아빠는 평생 우리 가족 곁에서 늘 든든하고 큰 나무처럼 항상 건강하실 줄 알았다.
매주 아빠를 보러 가면 나는 항상 바쁜 시간을 보냈다.
두피마사지와 귀마사지는 기본.
팔다리 마사지도 해드리며, 아빠가 좋아하셨던 음악도 들려드렸다. 마사지를 해드릴 때는 편마비로 인해서 한쪽 팔·다리 근육이 너무 빠져서 맘이 아프긴 했지만, 재활을 하며 전보다 근육이 조금 붙으신 듯했다.
또 하나, 하루라도 빨리 소통을 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이 생겨 바로 입 주위 마사지도 해드리곤 했다.
이런 나의 노력들이 아빠에게 조금씩이나마 찬란하게 닿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오히려 힘이 났다. 아빠와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본다는 도전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지를 알려주시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