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는 소중함.
2차 전원 후, 적응이 완벽히 다 되었다고 생각했던 아빠가 며칠 동안 못 주무셨다고 했다. 적응하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셨는 모양이다.
미열이 계속 있었고, 가래도 조금씩 늘어나 엑스레이와 뼈스캔 검사 등 여러 기본적인 검사들을 진행했다. 이전 병원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검사들에 마음이 놓였다.
"엑스레이 결과를 보니 아버님 폐에 하얀 점들이 발견되었어요. 이 하얀 점들은 폐에 염증이 있다는 것이구요. 흡인성 폐렴이시니 항생제와 해열제 투여를 진행해 볼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
순간 덜컥했다. 뇌졸중 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환 중 하나가 폐렴이란 이야기를 들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폐렴을 이겨내셨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치의 선생님과 다시 면담을 했다.
"드시는 양에 비해 소변이 잘 안 나와서 이뇨제를 쓰고 있어요. 그리고 뇌기능 회복에 도움이 되는 뇌기능 관련 약을 다음 주부터 투여하려고 해요. 뇌기능 약을 쓴다고 해서 바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보호자분께서도 아버님께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하시고, 좋은 음악도 들려드리시고, 가족분들 사진도 보여드리면서 많은 걸 해주셔야 해요."
순간 뜨끔했다.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요새 조금 게을러지지 않았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아빠의 회복을 위해 게을러지지 말자.' 라며 상기하게 되었다.
아빠는 재활도 하나둘씩 늘려갔고, 뇌기능 관련 약의 복용으로 인해 인지가 조금씩 좋아지셨다. 가위바위보도 곧잘 따라 하시고, 휠체어를 타시면 한 손으로 혼자서 휠체어 바퀴를 미시기도 했다.
아빠의 이런 변화는 나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아빠가 점점 더 나아지시니까 더욱더 나아지셨으면 하는 바람만 커져갔다. 하지만 점점 더 나아지실 걸 알기에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빠도 충분히 많은 노력을 하시고 있고, 나아지고 있으시니 말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창밖에 어둠이 드리워진 풍경들을 보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문득,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다른 뇌졸중 환우분들이나 가족분들은 밤낮 쉴 틈 없이 열심히 노력하시던데..
나는 잘 거 다 자고, 쉴 거 다 쉬면서 아빠의 기적만을 바라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 싶었다. 물론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있었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있었지만 내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하지만 아빠께서 주신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생각했다.
아빠께서 우리 가족의 곁에 있으신 것에 대해, 아빠가 점점 더 나아지시고 있는 것에 대해,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많은 경험들과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나의 몸과 정신이 건강한 것에 대해.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살자.' 라며 생각의 흐름을 바꾸어보기로 했다.
나의 몸과 정신이 건강한데 무엇이든 못 할까?
아빠께서 투병 중인 이 상황이 어쩌면 남들보다 일찍 겪게 된 건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이렇게 된 데에도 다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결심했다.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열정을 다해 보는 걸로,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보는 걸로.
이후, 아빠는 목관을 바꾸고, 침대에 걸터앉는 연습을 하시며 티비를 보는 것까지 가능했다. 심지어 이어폰을 손에 쥐어드리면 귀에 알아서 스스로 꽂으시는 등의 세밀한 동작을 하시는 걸 보고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던 그 일들을 아빠가 해내셨으니 말이다.
조금 오래 걸리실지 몰라도, 늦을지 몰라도, 점점 더 나아지시고 있는 아빠의 그런 모습들에 동기부여를 얻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이 상황이, 이러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열심히 노력하는 내 자신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야 나는 철이 드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