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현실과 이상의 사이
그녀와 나는 짧을 것 같았지만 길었던 ‘한 달’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이겨내고, 다시 우리의 자리로 돌아왔다.
일상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저 평화로웠고, 회사도 그렇게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지만 여전히 ‘자금난’이라는 불안의 이름이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부채와 고작 하루정도밖에 밀리지 않았던 급여지급일은 이제 2주가량 밀리기 시작했으며, 생산일정에도 차질이 생기는 등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가용자금이 아예 없어 이러다가 정말 회사가 망하겠다 싶은 순간에도 며칠 뒤면 신기하게 수금이 되었다.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은 나를 마치 시험하기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알 수 없는 답답함의 기류는 우리의 미래를 말해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도 ‘나는 이제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더 이상 쓸 에너지가 없어.’ 라고 말하는 듯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는 회사의 미래와 이직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주를 이루었다.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러다가 회사가 진짜 다음 달에 망하는 거 아니에요?” , “우리 회사 망할 때까지 버텨야 하니까 미리 실업급여부터 알아볼까요?” 등등의 농담 반 진담반 같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애써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에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직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짙어져 갔다.
이직에 대한 많은 생각들로 인해 먹구름 속에 갇힌 길을 잃은 새와 같다는 기분을 느꼈을 무렵,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산책을 하던 그녀의 표정에 무엇인가를 결단한 듯한 ‘단호함’이 보였다.
“차장님, 우리 지금부터 이직준비하는 게 어때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회사에서 우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우리가 헤어지는 건 슬프지만, 우리도 살아야죠.”
맞다. 그녀가 했던 말들을 언젠가는 내가 하리라 혹은 내가 들으리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사실 나는 그녀를 혼자 두고 먼저 떠날 수 없는 책임감에 그토록 망설였던 것일까 싶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용기.
그 용기를 그녀가 먼저 두드려주었다.
“맞아요. 사실 나도 그 말을 언제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지금의 상황에서 찰떡씨보다 내가 먼저 떠날 수가 없기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아요.
우리는 충분히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인데 성장하기는 커녕 불안한 환경만을 수습해야 할 우리의 시간들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우리 떠날 준비 해요.”
그녀가 나에게 한아름 안겨다 준 ‘할 수 있다’ 라는 용기의 선물은 이후 그녀에게 ‘잘 될 거야’ 라는 충분한 가능성의 온기로 전해주며 서로를 다독거렸다.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믿으며 ‘용기’의 한 발자국을 내디뎌보기로 했다.
그리고 ‘현실’에 맞서는 단단한 우리의 에너지를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