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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02. 2020

호박죽

할머니와의 추억

조선이 망하기전 태어나셨던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내 삶의 온전한 사랑으로 기억되시는 분이다.

벌써 돌아가신 지가 20년이 되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할머니는 나를 온전한 사랑으로 대해 주셨다.

막내 손자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대단하셨든지 내 위로 모든 형제들, 특히 누나들의 질투와 시기가 대단했다.

어린시절엔 그 시기와 질투가 다소 부담으로 느껴져 누나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없지 않았지만 , 어른이 되어서 가끔 생각해보면 할머니를 각별히 따르고 보살피는 막내 손자에 대한 반대 급부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된다.


누나들과는 달리 어린시절의 나는 할머니 품에서 잠을자고 ,할머니의 심부름을 도맡아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버스를 타고 고모집에 모시고가는, 착한 손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호박죽을 먹었던 것은 그렇게 할머니를 모시고 , 아니 할머니를  따라서  누군지도 모르는 할머니 친척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어느날이었다.

길러리에서 수레위에 여러가지 군것질꺼리를 올려놓고  판매하는 어느 행상의 일자 나무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떠 먹여주신 노란 색깔의 호박죽을 처음 먹어본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

입안에서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달짝지근한 그 맛은 다른 모든 텁텁함을 이겨내고 어린 아이였던 내 눈을 동그랗게 뜨게 했다.


가끔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크기의 새알이 섞여 입속에 들어 올때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호박죽의 외관상 첫인상은 그리 깔끔하진 안았지만 할머니에 대한 신뢰로 주저없이 받아먹은 그 호박죽은 50여년 인생을 살아온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제는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가끔 죽을 먹기는 하지만 달짝지근한 맛 이외의 느낌은 전혀 없다.

아직도 왕성한 식욕을 유지하는 나로서는 상술에 찌든 인스턴트 호박죽이나 죽체인점에서 파는 호박죽으로는 성에 차질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여성인권이 신장된 오늘을 살면서 아내에게 호박죽을 만들어 달라고 할라치면 혹, 이혼합의서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도 해본다.


할머니는 사랑스런 손자때문에 돌아가시기전 얼마간 햄버거를 드신적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나신 우리 할머니는 손자가 사온 햄버거를 곧잘 드시곤 하셨다.

할머니가 사주신 호박죽에서 내가 경이로움을 느꼈듯이, 조선시대때 태어나신 할머니에게도 그 햄버거가 추억이 되신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106세의 연세에 틀니도 없이 드신 그 햄버거에서 할머니께서 무슨 맛을 느꼈을까마는 , 아무래도 막내 손자가 사온 그 정성을 드신게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도 한식을 좋아한다.

어릴때 그 호박죽의 맛에 길들여진 것처럼 내 입맛은 한식에 길들여져 있다.

25년을 비행기를 타고 힘든 서비스를 지탱할수 있었던 힘은 아무래도 기내식중의 한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106세라는 연세로 돌아가셨다.

막내 손자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에게 호박죽을 사주기를 할머니가 바라시겠지만 , 우리 아이들은 호박죽보다 피자와 햄버거를 더 좋아하니...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세상이 변하고 입맛이 달라져도 함께먹는 즐거움과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변하는 세상에서,  달라진 입맛으로부터 지켜야 할 한식문화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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