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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02.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호텔귀신

동양철학에서는 사람이 사는 인간세계를 陽의 세계라 규정하고 삶을 끝낸 사람들의 영혼이 머무는곳을 陰의 세계라 합니다.

간혹 이 두 세계의 경계에 머물러서 양쪽을 오가는 존재 또는 기운을 귀신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이야기 소재 중에 하나가 귀신이야기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귀신은 음습하거나 어두운곳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우리 승무원들은 호텔귀신을 자주 언급합니다.


주로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데 직접 보지 않고는 잘 믿지 않는 저로서는 가소롭기도 하지만 가끔은 궁금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호텔에서 귀신을 봤다는 부기장하고 얘기를 나눠 봤지만 그리 믿음은 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같은 승무원이었던 제 아내도 승무원 시절에 싱가포르에서 귀신을 봤다고 합니다.

침대 다리맡에서 두사람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나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살짝 봤더니 동남아 귀신 두명이 있었답니다.

웃기는건 두 귀신의 말귀를 잘 못알아들어서 무섭지도 않아서 그냥 잤다는겁니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습니다.


승무원 중에는 귀신 이야기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데, 왜냐하면 해외호텔에서는 혼자 방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년에 삼분의 일 정도를 해외나 지방호텔에서 혼자 잠을 자야 하는 승무원 입장에서는 귀신이야기가 반가울리가 없겠지요.

그럼에도 호텔까지 가는 버스안에서 소문으로 들었다는 귀신이야기를 하는 운항승무원이나 남승무원이 가끔 있습니다.

무슨 이윤지 모르지만 ㅋㅋㅋ..


시차가 맞지않아 해외 호텔에서 깊은 밤을 혼자서 지내야 하는 여승무원 입장에서는 귀신이야기 때문에 잠을 못잘까봐 걱정이 되는데, 사실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일껍니다.


수년전 청주에서 하루밤 자고 다음날 제주를 거쳐 서울로 오게되는 스케줄이 있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청주 호텔 귀신 이야기를 하며 무사히 다녀오라고 말하는데, 나름 대범했던 나 자신은 웃음을 보이며 귀신이 보고싶다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비행기가 청주에 도착한 후 청주 베이스 승무원들은 모두 저를 걱정하며 자기집으로 돌아갔고, 운항승무원 2명과 저 셋이서 호텔로 출발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청주 지상 직원에게 청주 호텔 귀신에 대한 소문을 물어 보았습니다

" 호텔에 진짜 귀신 나왔어요?"

부정적 대답을 기대했지만 직원은

" 며칠전 본사 담당 직원이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갔지만 결론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을 뒤로 하고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호텔 종업원의 눈빛에는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는듯한 표정이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시 외곽에 있는 작은 규모의 호텔이었지만 투숙객이 우리밖에 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샤워할때 귀신이 나타나 문앞에서 기다렸다는 소문때문에 샤워내내 문밖을 주시했고, 새벽 한시까지도 제대로 잠을 못자고 문밖을 힐끔거리며 자는둥 마는둥 하였습니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몇시간만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매려 왔습니다.

' 역시..귀신은 무슨..헛소문이지 뭐'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체크 아웃을 하였습니다.

"여기 귀신 나온거 맞아요? " 하고 물었습니다.

" 아~ 사무장님 방은 아니고요 복도 반대쪽 방입니다".,,

'뭐야 그럼, 소문이 사실이란 말야' 순간 소름이 돋으며 무사히 하룻밤을 보냈음에 안도하였습니다.

게다가 한가지 더 알게 된 사실 하나는 귀신 출현 여부를 조사하러온 본사 담당 직원도 무서워서 혼자가 아닌 둘이서 밤을 보냈다는겁니다.ㅋㅋ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은 바뀌었고 청주 모 호텔 귀신 이야기는 소문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호텔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잠을자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익숙치 않은 낯선 호텔에 대한 걱정도 없진 않습니다

25년을 비행하면서 아직 한번도 호텔귀신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힘든 비행에다가 평소의 심약한 심신을 가진 승무원들은 혼자 지내는 호텔 방에서 무서워하며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즐거운 감정이 더 크다면 아무리 넓고 큰 호텔방이라 할지라도 편안한 방이 될껍니다.

아직도 전 호텔 귀신을 만나지 못했지만 가끔 상상을 해 봅니다.

외국 호텔방에서 외국 귀신을 만나면 영어로 말해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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