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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Jun 06.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폭발물 위협과 비빔밥

25년의 비행 중 경험했던 다양한 에피소드 중에서 유독 초년기의 기억이 뚜렷한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모든 일이 낯설고 긴장을 주는 가운데 호기심이 강한 저 자신의 성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이야 비행기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호기심 보다 자신감이나 너그러움이 더 강하기 때문에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전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륙 후 음료 서비스가 끝나고 어느정도 식사 서비스가 진행되던 중에 갑자기 전 승무원 호출 인터폰이 울렸습니다.

서비스를 중단하고 해당 팀장이 있는 곳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습니다.

타고있는 항공기에 폭발물이 탑재 되어있다는 신고로 인해 하와이 호놀룰루 국제 공항으로 회항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절차에 따라 서비스를 중단하고 모든 승무원들은 폭발물 탑재시에 해야할 안전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승객의 동요를 막기 위해 가급적 간접적이고 동요되지 않은듯한 자세로 기내 방송을 하고 각자의 담당 구역의 승객에게 관련내용을 개별적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문제는 그와같은 경험이 처음인 기장 부기장 그리고 승무원과 승객들은 긴장과 걱정으로 시간의 흐름이 너무 더디게 여겨졌습니다.

곧바로 회항한다고 했는데 비행기는 한시간이 지나도 착륙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출발했던 시간을 감안하면 벌써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해야 했는데 말입니다.

온갖 상상속에서 불안은 더해 갔습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후에 알게된 내용은 한국 본사와의 연락및 보고와 각종 조치사항 확인, 연료 덤핑등의 과정에서 안내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회항이 늦어진 것입니다.

결국 승객들의 동요가 시작되고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개별 안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 같은 구역을 담당하는 반대쪽 선배 여승무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구역의 개별 안내를 끝내고 갤리(승무원 근무장소)로 돌아가니 그 선배 여승무원은 태연하게 ,정말 느긋하게 비빔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비빔밥 옆에는 반찬으로 양식을 하나 더꺼내놓고 열심히 먹고 있다가 저를 보더니 " ㅇㅇ 씨 얼른 비빔밥 먹어~. 맨날 부족해서 못 먹었는데 오늘은 실컷 먹자고~ 어차피 내리면 다시 실어 줄껀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순간 난감했습니다.  폭발물이 실려 있을지도 모르는 하늘위의 비행기에서 정신을 집중하면서 비빔밥 먹기에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에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상시 인기 많은 비빔밥을 승객들이 모두 선택하면 승무원들은 좀처럼 비빔밥을 먹기 힘들었기에 그녀의 행동이 어느정도 이해는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숟갈씩 비빔밥을 먹을때 마다 즐거워하는 그녀의 표정은 진심이었습니다.

폭발물의 위협과 죽을지도 모른는 상황에서 비빔밥 한그릇에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녀의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시 막 선보인 비빔밥의 인기는 그녀에 한해서는 폭발물보다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결국 두시간 이상이 걸려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공항내 외딴 지역으로 이동 후 전 승객이 하기하면서 엑스레이 검사를 받고 , 세마리의 폭발물 탐지견이 비행기의 모든 구역을 확인한 후 승무원 대기 구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미국의 FBI 요원이 우리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사무장이 추가 내용을 알려주는 시점에도 다시 하와이에 더 머물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저에게 살짝 말해 주었습니다.


실재로 FBI 요원의 설명에 의하면 폭발물 탑재 위협은 항공기 출발 약 10시간 전에 있었고, 호놀룰루 공항 당국은 철저한 비밀하에 항공기와 승객들 및 수하물을 강력히 검색을 했으며 용의자를 첮아서 체포하러 가는 중이었다는 것을 이륙후 순항중인 항공기에 알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회항 했는지 모르겠다며 이왕 왔으니 자기들이 승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항공사에 연락해서 며칠 더 머무르게 해주겠다는 호의(?)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해당 항공편의 승객의 일정과 회사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출발 포기를 한 승객을 제외하고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끝나고 식사를 하는 시간에 그녀는 또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지금 밝히지만 당시 제 눈에는 그녀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쯤 결혼해서 잘 살고있을 그녀가 가끔 비빔밥 그릇에 중첩되어 생각 나기도 합니다.


항공기는 여러가지 위험한 상황에 처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철저히 준비하고 절차를 만들어 점검에 만전을 기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저 하늘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지구의 이쪽 저쪽을 날아다니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겠지요.


갑자기 다시 비빔밥이 먹고 싶어지네요.

25년을 먹었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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