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k split
Aug 16.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나에게 있어서 일본이라는 나라..
재일 교포로 일본에서 살고 계시던 큰아버지가 오시는 날은 가족 모두가 들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또래 아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난감과 동네에서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갖게 해 준 큰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큰아버지께서 살고 계신 일본 이라는 나라는 내가 역사를 배우기 전까지는 긍정적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승무원이 되고부터는 비록 여행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여러 도시를 수십 아니, 일 년에 최소 5회 이상은 갔으니 , 20년 동안이라고 해도 백번 이상은 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나에게, 아니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좋은 느낌으로 다가 오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품을 비롯하여 일본 문화가 우리에겐 익숙한 대상이 되었고 역사적 감정이 불거졌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우리는 일본 제품을 사용하고 일본으로 여행을 갑니다.
승무원들이 일본지역에 잠시라도 머무르게 되면 주로 생활 약품에서 기초 화장품까지 구매를 하고 심지어 먹거리까지 사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편의점이 대중화되기 전에 이미 일본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편의점이 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늦은 시간 일본 호텔에 도착하면 유니폼을 입은 채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일본 라면을 비롯해 많은 간식을 사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의 간격이 많이 줄어든 이유도 있고, 한류라는 문화적 현상으로 인해 굳이 일본 제품에 대한 매력이 많이 상실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일본 편의점에서 라면을 살 때마다 놀랬던 점 한 가지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에 들어 있는 이쑤시개였습니다.
일본 어디를 가든 편의점에서 제공된 나무젓가락에 이쑤시개가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일부러 없기를 바라고 확인 한 나무젓가락 포장 안에는 얄밉게도, 어김없이 이쑤시개가 있었습니다.
예의 바른 아르바이트생들의 행동도 어디를 가나 비슷했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그들의 철저함이 느껴졌으니 정말 대단한 국민성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그들의 친절이나 상냥한 미소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사실..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공감한 부분입니다.
철저하게 개인주의화되어가는 그들에게서 과거 군국주의 일본에서 보편적이었던 집단주의의 모습을 조금씩 지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을 자주 접하면서 배운 긍정적인 부분은 그들의 예의 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배에게 들은 얘기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체류하던 호텔이 바뀌어서, 마지막으로 그 호텔에 투숙한 승무원들이 아침 일찍 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있었는데 버스가 출발하자 호텔 직원 여러 명이 나와서 그동안 이용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라는 겁니다.
그것도 한참 멀어질 때까지 비를 맞으며 허리를 숙인 채 말입니다.
본심이야 어찌 되었던 그 장면을 상상하면 일본인들의 직업의식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았습니다.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일본 사람들, 그건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본의 놀라운 점은 꼼꼼하고 정확함입니다.
이쑤시개 하나로 깨닫게 된 그들의 철저함과 비를 맞으며 버스가 떠날 때까지 인사를 하는 그들의 서비스 정신은 한동안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철저함이나 꼼꼼함도 요즘은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거나 경계심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 그들의 사회 문제가 국민성에도 조금씩 반영되는 것 같기도 하고, 과거사에 대한 그들의 철저한 사과와 반성 없이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로부터 영원히 반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6여 년 전 어느 날, 저녁에 일본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룸키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비 한쪽 구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 가들리기에 돌아봤더니 중년의 남자 여러 명이 엉켜 붙어 몸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그중 서너 명이 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폭력을 당하던 사람이 우리 쪽으로 도망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놀란 여승무원을 기둥 뒤쪽으로 보내고 돌아보니 중국인(대만 관광 가이드였음)으로 보이던 그 남자가 일본어로 경찰을 불러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호텔카운터의 일본인들은 다소 수동적인 모습으로 자기들끼리 얼굴만 마주 보고 있었고, 내 쪽으로 도망 온 그 중국인을 나도 모르게 도와주었습니다.
달려드는 4명의 일본인 앞을 가로막았고 , 내 옆을 지나 중국인을 때리려는 일본인 한 명의 목을 감싸 안았습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그들은 주춤하고 물러났으며 코피를 흘리던 그 중국인은 내 뒤에 서서 일본인 호텔 직원에게 경찰을 불러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한국어로 위협을 하는 나와 일부 호텔 직원과 함께 그 싸움을 중재했는데, 지금까지도 그들이 왜 싸웠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호텔방에 올라가서 생각해보니 문제에 수동적으로 대처한 일본인 호텔 직원에게 화가 났고 싸움을 말려 줬는데도 고맙다는 말도 없이 전화로 통화만 하던 그 중국인도 얄미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제발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팀 여승무원들의 핀잔을 듣고서야 유니폼 입고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후회가 되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강한 경제력의 근원이었던 그들의 기술도 이젠 예전만큼 빛을 발하지 않는 것 같고 꼼꼼함과 정확함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었지만 이젠 전 세계 어딜 가도 별 차이 없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에 그들에게서 특별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반일 감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본인에 대한 세계인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은 서서히 무너 지는 듯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 낼 순 없지만 집단 성향의 장점으로 무장한 그들이 지금의 세상에선 큰 강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과거 역사에 대한 솔직한 반성이나 확고한 인식 없이는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습니다.
역사에 파묻혀 현실을 알지 못하니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그들만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늘 나에게, 아니 우리 국민들에게는 가까이하거나 함께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승무원들은 일본 호텔에서 체크 아웃할 때는 팁을 올려놓지 않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팁 문화가 없는 일본이라서 그런다고는 하지만 , 미국 또는 유럽 국가 승무원들은 룸 클리닝에 대한 팁, 호텔 픽업 기사에 대한 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우리가 그들에게 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주 오래된 감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일본에서 팁을 하지 않는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아주 오래 계셨던 고참 사무장님께 여쭤 봤을 때
" 미쳤니? 우리가 걔들한테 팁을 왜 줘?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야.." 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한편으론 이해가 갔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어릴때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그 나라가 한때는 부러웠지만 , 지금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몰염치한 나라로 내게 다가옵니다.
그래도 가까운 나라로서 변화된 모습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진정한 사과와 반성으로 서로 협력하고 함께 나아가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지 않을까요?
재일교포로 평생을 사셨던 큰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교포 후손들을 생각하면 무작정 미워할 수만은 없는 나라..일본.
내게는 일본이 그런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