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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Aug 12.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선배에게 배워야 하는 것들..

처음 남승무원 선배를 만나게 된 그날, 기억나는 건 술을 많이 먹은 거밖에 없다.

 년 만에 입사한 후배를 환영하기 위해 마련한 회식 자리에는 각 기수별, 시간이 되는 많은 선배들이 참석했었다.

길게 늘어선 테이블마다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우리 동기들은 그 빈자리에 한 명씩 앉아 미리 와 계신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펼쳐질 남승무원의 세계에 대해서 교육 중에는 듣지 못할 진정한 교육을 받았다.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잔을 받아 마시다 결국 몇몇 동기가 맛이 가기 시작했고 , 그나마 술이 센 나랑 몇몇 동기만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를 유지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어제 있었던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남자 선배들의 따뜻함과 배려는 또렷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남 승무원 선배와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비행을 시작하면서 그 많은 선배들을 다 만나지 못했지만 한분 한분 함께 비행하면서 교육에서 배우지 못한 실전 기술(?)들을 전수받으며 선배라는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선배란 존재 늘, 또는 , 모두가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도 비행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되었다.

각자의 성향으로 인한 갈등이 있기도 했고 , 후배를 향한 따뜻한 감정으로 실수를 감싸주는 선배를 만나기도 했으며, 자신만의 원칙으로 직장 상사 이상의 감정을 보이지 않는 선배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선배란 나에게 도움을 더 많이 주는 존재임은 분명하다는 것을 시간이 갈수록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와 인연을 맺었던 많은 선배들이 좋은 가르침과 경험을 물려주고 회사를 떠났지만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기고 시고 떠들었던 시간들은 즐겁게 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모한(?) 영어 실력으로 전 세계 관광지를 앞장서서 당당히 걷던 그 선배, 배고파 베개라도 뜯어먹을까? 하고 생각하던 유럽의 어느 날 새벽에 밥 먹으러 오라던 그 선배, 버버리 코트를 비롯해 과하게 쇼핑한 물건을 내 가방에 슬쩍 넣고 세관을 통과하던 그 선배, 방에 모여 고스톱이나 치자며 후배의 미국 달러를 철저하게 따갔던 그 선배, 체류 기간 3일 내내 스키 타러 가자던 그 선배, 비행의 시작과 끝은 음주가무 라며 밤새 술만 마시자던 그 선배....

이제 다들 은퇴하고 무엇들하시며 살고 계신지..


나는 그런 선배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

비행 업무에 도움이 되는 문제 해결의 다양한 방법은 물론이고, 까다롭거나 무례한 승객을 대하는 요령, 터지면 큰일 날 것 같았던 문제들도 인간관계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와도 같은 경험담을 들었다.


내게 있어서 그 선배들의 행동이나 조언 그리고 필요할 때 나서서 주신 도움들은 오랜 비행의 힘, 그 자체였다.

내 기준에 나쁜 선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선배들도 피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만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몇몇 기억나는 선배 중에 한 분의 이야기를 하자면, 소심함으로 회사에서 두 번째라고 할 그분과 팀이 된 적이 있었다.

다행인 건 팀이 되기 전에 함께 비행을 하면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선배가 왜 모든 승무원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는지를 몸소 경험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그 선배가 그날 베트남 비행에서도 본인이 저지른 잘못을 여승무원에게 모두 뒤집어 씌웠다.

게다가 그 문제가 사무실에 보고 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한국 입국을 미루고 입국장 사열대 근처에서 모든 승무원을 붙잡고 문제를 더 크게 키우고만 있었다.

결국 후배인 내가  그 선배 몰래 무모한 인간관계와 과감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입국 사열대를 통과했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다른 경로로 사무실에 전달되었고 담당 상무의 호출을 받고 달려간 곳에서 그 선배는 질책을, 나는 칭찬을 받는 묘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일이 있은 그 이후 곧바로 새 팀에서 그 선배를 팀장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여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그 선배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심지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선배도 헤어지면서 내게 던진 좋은 충고가 있었다.

"ㅇㅇ야, 나중에 팀장이 되면 팀원들 한테 절대 휘둘리지 마! 니 팀의 대장은 너 자신이니, 여러 시니어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팀 관리해야 한다"...

나중에 팀장이 되고 보니 더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팀장이 편해지려면 부팀장이나 시니어에게 팀 관리를 맡기면 되는데 , 그러다 보면 팀의 방향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권한을 위임하되 최종적 관리와 책임 그리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팀장의 의무이자 권한인데, 당시 팀장들 중에는 모든 걸 부팀장이나 시니어에게 맡기고 편하게 비행한 사람들이 많았다.

어쨌든 그 선배는 퇴직할 때까지도 많은 승무원들에게 욕을 듣고 말았지만 나는 그 선배를 피하지 않았다.

멀리서 그를 보면 다른 승무원들은 못 본 척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지만 난 오히려 달려가서 먼저 인사를 했으니.. 여하튼 선배란 존재는 좋든 싫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그 선배에게도 배울 점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를 겸손하게 인사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조직에 들어가면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선 후배 관계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조직에 소속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성향의 사람도 좋은 선배를 만나면 조직 생활이 무난하기도 하고 심지어 즐거워질 수도 있다.

선배에게 배워야 할 것들을 잘 찾아보면 어느새 나도 후배에게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될 것이다.

많은 선배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 선배보다 후배가 많은 위치가 되었다.


나는 과연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일까?

지금 생각해보니 선배들에게 배웠던 것들은 쓸모없는 게 없는 것 같다.

사소한 농담도 적절한 상황에서 활용해보면 도움이 된.

내가 선배들로부터 배웠던 많은 것들을 이제 많은 후배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알려준 많은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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