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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Aug 20.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미생(未生)

내가 입사하던 시기엔 인턴이라는 단어가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2개월의 신입 승무원 교육이 끝나자마자 인턴 과정 없이 바로 정직원이 되면서 국내선 비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회사원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정직원에 대한 근심이나 걱정보다 회사원으로서의 막연한 기대만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행 업무를 담당하는 승무원으로서 일반적인 회사원으로서 갖게 될 사무실, 책상, 의자, 컴퓨터와 같은 비품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모를 불안정한 느낌이 늘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었다.

회사원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는 오로지 매월 개인 메일 BOX에 전달되는 스케줄표를 받을 때뿐이었다.

물론 출근할 때 정장을 입고 회사 출입문을 통과할 때는 회사원이 분명했다.


그러다 신입 교육을 담당하는 사로 차출되어 훈련원이라는 곳에서 처음 내 자리와 책상 그리고 컴퓨터를 제공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처음으로 회사원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메일을 확인하고,오늘 해야 할 교육 내용을 미리 확인하다 보면 비행 때 느껴보지 못한 일상의 '흐름'을 타는 느낌이었다.

불 규칙적인 비행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일상의 흐름..

사실 이런 게 회사 생활이 아닐까? 라는 감정에 휩싸여 사무실 전직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비행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역시 내 마음속 또 다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깨달은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시 비행을 시작하면서  자리와 책상, 컴퓨터에 대한 미련은 까맣게 잊게 되었고 비행의 묘미 깨달으며 점점 더 승무원이 되어갔다.

정직원으로서 승무원이라는 불규칙적인 생활도 익숙해지다 보니 사무실에서 느끼는 일상의 흐름과 다를 바 없는 긴 흐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늘어나는 인턴 승무원들을 보면서 직업에 대한 느낌이 모든 이에게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 해졌다.


미생(未生)이라는 드라마를 처음 보았을 때  주변의 인턴 승무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나와 전혀 관계없는 것이 아님을 자라나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더욱더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같은 유니폼을 입었지만 다른 두께의 소속감을 가진 그들의 관심은 업무에 대한 완벽한 수행보다 책임 질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약간의 소심 내지 비겁함이 더 필요했다.

부당하게 느껴지는 대우와 현실을 인내하고 참으면서도 늘 미소를 잊지 않아야 하는 그들에겐 승무원으로서의 자부심이나 책임감보다 인턴 기간 동안 사고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피해 가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동기였다.


인턴 승무원의 문제는 또 있다.

그들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들의 불안정한 지위로 인한 문제인데,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자신감이나 책임감 , 호기심보다 두려움, 근심,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한참 배워야 할 시기에 부딪히기보다 잘 피해나가기를 더 원하는 것 같고 문제를 일으켰을 때도 책임지기보다 회피할 방법을 먼저 배우는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경력을 쌓다 보니 신입의 기간이 지나서도 제대로 된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하고 책임을 져야 할 관리자가 되어서도 면피용 희생자 찾는데 더 능숙함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관리자로서 필요한 역량을 쌓는 경험의 시간이 부족하게 되었고, 동료와의 소통에 있어서 다소간의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인턴 제도 자체가 인건비 절감을 목표로 한 고용의 유연성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리자 양성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은 최근의 깨달음이었다.

결국 조직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나 의사소통 문제, 창의력 부재의 원인은 인턴제도 또는 비정규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생의 삶은 배움에 있다고 본다.

완생(完生)을 향하는 길 위에서 나아갈 바를 결정하고, 갈림길에서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인턴 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에게 차이는 없다.

배운다는 자세로 미생의 길에서도 늘 고민하고 배우고 깨닫지 않으면 새로운 길에서도 미생의 싦을 살수 밖에 없지 않을까?


처음 입사해 회사원이지만 회사원으로서의 느낌이 부족하게 했던 사무실과 책상 그리고 의자가 없는 현장 승무원으로서 느꼈던 불안정감이 이제는 유니폼을 입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린다.

인턴이라 할지라도 유니폼을 입는 순간 우리는 똑같이 고객의 안전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

완생이 되는 순간까지 우리는 모두 미생이다.


인턴이든 정규직이든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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