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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Aug 18.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북극곰을 기억해~~

승무원이 비행기에 탑승하여 안전 및 보안 점검,그리고 탑재물의 확인이 끝나면 승객 탑승이 시작된다.

항공기 여행이 보편화되기 시작 한 이후 승무원들의 비행업무는 더욱더 바빠지고 힘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승객의 승무원 호출이다.

이걸 승무원들은 팩스 콜(PAX CALL)이라 부르거나 승객 오더(ORDER)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승객이 승무원을 호출할 때 어떤 부담감이 느껴져 호출 버튼을 잘 누르지 않고 갤리로 찾아오시거나, 아예 승무원이 무언가를 서비스하거나 지나갈 때 '저기요~' 하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승무원 호출 버튼 위치조차도 잘 모르거나, 조심스럽게 살짝 누르다 보니 호출을 알리는 표시조차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항공기 여행 경험 연령대가 낮아지고, 해외여행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항공기내의 기기 이용에 익숙해진 승객들이 승무원 호출을 쉽게 그리고 아주 당연시하게 되었고, 승무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 웬만하면 다 가능하다는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결국 승객의 숫자가 늘어남과 동시에 승객들의 승무원 호출이 잦아지면서 승객의 오더(order)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고객 불만도 늘어나게 되었다.

업무가 익숙한 승무원들에게는 가끔 일어나는 실수 지만 신입이나 비행경험이 미숙한 주니어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을 주는 게 승객 호출이었다.

오더(order)내용을 잘 기억하기 위해 메모를 활용하면 되지만 메모지나 볼펜 휴대가 어려운 유니폼으로 인해 오더 미씽(order miss)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승무원들의 know-how를 공유하기 위한 이벤트도 열고 메모지도 나누어주면서 문제 해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가진 know-how는 바로 북극곰, 하얀 북극곰이었다.

인간의 뇌는 부정 언어나 부정 명령어를 기억하는 것보다 이미지를 더 잘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에 인용된 실험 중에 '북극곰 연상'실험이 있다.

피험자에게 ' 북극곰'에 대한 사진을 보여주고

 " 지금부터 북극곰을 절대 연상하지 마세요~ 만약 북극곰이 떠 오르면 벨을 눌러 주세요~" 라고 했더니, 절대..떠올리지마세요..라는 명령은 망각하고 계속해서 벨을 눌렀다는 실험.

그래서 코카콜라는 이 북극곰을 광고에 활용했다.


나의 경우엔 승객이 주스를 요청하면 좌석번호를 보고 머릿속에서 주스를 든 북극곰을 연상한다.

만약 승객이 수면 안대를 요청하면 수면안대를 한 북슥곰을..볼펜을 요청하면 볼펜을 든 북극곰, 생수와 볼펜 그리고 안대 등을 요청하면 안대를 쓰고 양손에 생수와 볼펜을 든 북극곰을 연상한다.

그래서 승객 요청을 거의 잊어버리지 않는데 여러 명의 승객이 요청하면 요청한 물건은 떠오르는데 좌석번호가 가끔 헷갈리곤 한다.

그래서 3개 이상의 요청은 절대 한꺼번에 받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뿐만 아니라 집안일에도 가끔 활용한다.

아내나 아이들이 무언가를 요청하면 즉시 북극곰을 호출하여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햄버거를 든 북극곰... 학용품을 든 북극곰..시장바구니를 든 북극곰...

정말 효과가 좋다.


하루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가 출근하면서 빨래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아침이라 대답만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내 머릿속에 북극곰이 나타났다.

그런데 내용이 확실치가 않았다.

팬티만 입고 있는 북극곰..뭐였지? 뭔가 시켰는데..

잠시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팬티 입은 북극곰은 마누라가 명령(?)^^한 빨래였던 것이다.


나는 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 행동경제학에 관한 책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자주 읽는다.

도서관에 가면 습관대로 자주 가는 책꽂이를 서성거리는데 , 가끔 그곳에서 오징어 땅콩을 먹고 있는 북극 곰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주 예전에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아빠, 오실 때 오징어 땅콩 좀 사주세요~~"라고 했던 부탁이 도서관과 연결되어 북극곰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후 변화로 북극곰의 개체가 줄어든다고 한다.

아주 먼 미래에도 북극곰이 지금처럼 머릿속에 나타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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