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k split
Sep 04. 2020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술(酒)...당신은 언제 술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까?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를 불러 처음 술을 먹인 친구들이 있었다.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의 입장에선 모범적이고 공부를 잘하던 나를 꼬셔서 술을 마시게 한 그 친구들이 나쁜 놈들이 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도 술을 끊지 못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잔씩 하면서 삶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그 친구들이 지금도 영락없는 친한 친구들이다.
물론 그날 이전에도 제사 때나 중학교 소풍 때, 술을 먹어 봤지만 , 독서실에 있는 내가 불려 나가 함께 마셨던 그날이 내 생애 처음 취한 날이기 때문에 , 내 기억 속 일기장엔 그날이 첫 경험이었다.
그 이후 첫 번째 대학 입학 실패 때나,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처음 실연을 당했을 때나, 미래가 답답하여 방황하면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혼자 앉아 있을 때나, 대학시절 한창 시위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해 낼 때나, 대학 졸업 후 승무원 시험에 합격한 그날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술은 언제나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술 마시는 가장 흔한 이유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기분 좋아서 한잔, 마음이 괴로워서 한잔, 또는 외로워서 한잔, 그것도 아니면 만남이 즐거워 한잔...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무언가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빠뜨릴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바로 술(酒)이 아닐까 쉽다.
그래서 난 술을 끓을 수 없다.
요즘은 술집에서 친구나 동료들과 왁자지껄 하게 마시는 술자리보다 아내와 집에서 맥주 한잔 하거나, 아는 사람 한 두 명과 마시는 술자리가 좋다.
2차도 필요 없고 한잔 후 가볍게 커피 집에 가서 아쉬움을 갖고 다음을 기약하며 마시는 그런 술자리가 좋다.
비행을 나가 마시는 술자리는 더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 맞는 몇 사람과 한잔하고 각자 헤어져 방으로 가면 그만이라, 부담 없이 술자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차로 인한 불면증이 해소되기도 하고 ,비행 근무 중 알게 모르게 쌓아온 오해나 감정도 풀고, 업무적 관계보다 동료로서 상대적 관계를 확인할 수도 있고 해서 과하지 않으면 좋은 술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술자리가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술을,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금지하는 것도 올바른 방법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술은 인간 역사뿐 아니라 문화와 문명의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술 취해서 지은 시(詩)나 시조가 인간의 감성을 얼마나 풍성하게 했는지, 또는 술에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요리법을 개발했는지 등을 보면, 술을 쉽게 등질 수 없는 게 우리 인류의 운명이 아닐까?
술...
난 아마도 술을 끊지는 못할 것 같다.
술로 인해 아파하거나 상처 입거나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도 많겠지만 , 어른들 말씀처럼 '과하지만 않으면'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는 친구를 떠나보내긴 어렵다.
지금도 냉장고 속 맥주 캔을 만지작 거리며 아내가 퇴근할 시간만 기다린다.
결국 잔소리로 끝날 아내와의 술자리겠지만 첫 잔을 마시는 그 상쾌함과 마지막 잔의 알딸딸함을 못 잊어 아내의 잔소리를 감내하며 무슨 안주를 먹을까 고민 한다..파란 하늘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