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설 이야기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집 앞마당에 작은 꽃씨가 날아온 적이 있었어.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주 작은 씨앗이었지.
그러니까, 꽃씨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 때가 언제였냐면, 아마도 다른 꽃에 물을 주러 화단을 둘러볼 때였을 거야. 전에 심어두었던, 내가 키우던 꽃 사이로 아주 작은 초록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이더라구.
그저, 처음에는 잡초였을까 하는 생각에 뽑아버릴까 했었지. 하지만, 뽑지 못하고 두고 말았어. 아마도, 흙 사이를 힘들게 비집고 나오는 그 모습이, 키큰 다른 꽃들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햇살을 보려 애쓰는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안쓰럽다고 느껴서일거야.
그저, 처음에는 지켜만 보았어. 아마도 그렇게 자라다 죽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말이지. 결국엔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그늘 속에서 죽어갈 운명일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다가, 어느샌가 그 꽃에 물을 주고 있는 내 자신이 있더라. 그리고 큰 꽃들을 다른데로 옮겨심어 햇빛을 볼 수 있게도 해주고 말이야. 이것만은 내가 왜 이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다른 꽃에 물을 주고 남은 물을 부었던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물을 주려고 했었던 걸까. 물이야 그렇다고 해도 다른 꽃을 심은 화단에 우연히 떨어진 이름없는 꽃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을까.. 하여간 그렇게, 금방이라도 죽을 줄 알았던 그 꽃은 다행히도, 내가 다행이라는 말을 한건가? 하여간 건강하게 자라기 시작했어.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자랐던 그 꽃. 이름없는 꽃이니 무명꽃이라고 해야 하나. 그 꽃이 핀 모습은.. 참 내 맘에 들었었어. 어떻게 이름도 없는 들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지만 작은 꽃만이 가지고 있는 그 매력.. 아마 내가 보았던 꽃중에 제일 내 뇌리에 남아 있는 꽃일거야. 지금도 기억속에 선해... 내가 '꽃'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그 모습...
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란, 자신이 가진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무명꽃.. 그 꽃을 난 꺾었어. 그렇게 아름다운 꽃을 화단에만 두고 싶지 않았어. 아름다운 물병과 함께 집 안에 꾸며두면 누구나 그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 느낄 테니까. 그렇게 꾸며두는 것이. 그 꽃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길이라 믿었어. 그 때는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화분 위에 올려진 꽃은 처음 피었을때 느꼈던 그 모습이 보이질 않는거야. 분명히 같은 꽃이었는데. 그 모습 그대로 올려두었는데. 내가 느낀 그 아름다움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남은건.. 시들어가는 줄기와 썩어가는 뿌리 뿐... 꽃을 잃어버린 뿌리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썩어버린거야.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어. 이름도 없었고, 온 곳도 없었고, 남긴 것도 없었던 무명꽃...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꽃은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어. 그 꽃에 대해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있다면 오직 내가 느꼈었던 첫인상 뿐. 그렇게.. 무명꽃은 무명이 되었어.
그 때가 내가 꽃을 키우면서 처음으로 후회를 하게 된 때였어. 내가 그 꽃을 꺾지 않았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씨를 남길때까지 기다렸다가 꺾었었다면.. 아니 그 꽃의 이름이라도 찾아보고 알았었다면... 조금만이라도 그 꽃을 알려고 노력했었다면...... 그러면 어땠었을까 하고..
그 이후, 요즘도 화단에서 꽃을 키우곤 해. 이미 알려지고 모습만 봐도 아름다운, 화려한 색을 가진 그런 꽃들을 말이야. 하지만, 그때 그 꽃이 자랐던 그 자리만은 아무 것도 심지 않았어. 그리고, 화단에 올 때마다 아무 꽃도 없는 그 곳에 괜시리 물을 주곤 해.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말이야.
그럴지도, 아마 다시는 그 꽃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 결국 그 꽃의 이름을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기다리고 준비할래. 혹시나 그 꽃이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게 된다면, 그 때는... 그 때는 꺾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볼거야. 무명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저 멀리서. 그렇게.
한단설, 201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