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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Dec 26. 2020

4인 가족의 열차 생활


머리를 감다    


하루라도 머리를 감지 못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치는 체질이다. 돋친 가시가 더 자라기 전에 머리를 감아야 했다. 그러나 혼자서는 못할 일이다. 화장실이 좁은 데다 세면대에서 물을 틀려면 한 손으로 반드시 고정시키고 있어야 한다. 즉 나머지 한 손으로 물을 붓고 머리까지 거품을 내 헹궈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 명 앉기도 버거운 화장실로 다른 승객들이 눈치 못 채게 태민이와 함께 들어갔다. 컵라면의 빈 컵을 바가지 삼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단지 머리를 감았을 뿐인데 나는 내 인생의 어떤 승리자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우리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내는 무지 부럽다는 눈치였다.         




아무르 호랑이

   

벨로고르스크(belogorsk) 역이다. 밤새 부슬비가 내릴 태세다. 정차하는 역마다 선로에서 잠시 산책이나 즐기던 승객들은 마음이 바빠지는 모양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우리도 식량이 떨어져 가는지라 열차가 다시 떠나기 전에 노점으로 후다닥 뛰어가 이것저것을 급히 샀다. 이 와중에 태윤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안 사준다고 울먹인다. 참으라고 눈치를 주었더니 어린 녀석의 눈시울이 점점 더 붉어졌다. 게다가 깜깜한 하늘에서 빗방울까지 날리기 시작했다. 보는 내가 처량해져 조금이나마 달래볼 심산으로 눈길을 주는 아무르 호랑이 소형 목판을 사줬다. 그런데 이것도 싫단다.    


준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구나. 애가 싫어하는 것을 왜 사줬냐며 아내는 또 아내대로 역정이다. 작은 목판에 새겨진 아무르 호랑이만이 무표정하게 나를 보고 있다.




완벽한 대비  

  

열차에 오른 지 만 이틀째를 맞고 있다. 파블로비치(pavlovich) 역에 내려 또 매점에 들른다. 러시아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팔도 도시락 컵라면과 훈제구이, 만두 등 제법 많은 것을 샀다. 앞으로 이르쿠츠크 역에 내릴 때까지 식량 걱정은 없겠다. 항상 걱정이 많아 모든 것을 앞당겨 준비하는 버릇이 있는 나. 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걸 아는지 아내는 쯧쯧 하며 또 저 봐라 한다.    


연애 11년, 결혼하고도 또 14년. 25년을 친구처럼 만나고 살아온 아내다. 서로의 장점에 속아 지금 이 자리에 있지만 서로의 단점을 인정하고 함께 바라볼 곳을 일치시켜왔기에 늘 고맙고 설레는 사람이다. 그런 아내는, 나와 반대로 얼렁뚱땅에 가깝다. 내 눈에는 늘 대충 준비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꼭 닮아 있다. 꼼꼼한 척은 다 해온 남편이나 반대의 아내에게는 늘 뭔가가 빠져 있다. 아이들 겨울 여행에 필요한 외투나 숙소에서 편히 입을 잠옷 같은 것부터 생필품까지.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것은 늘 아이들 몫이다. 여행이 체질인 두 아들. 어딜 가나 아픈 데 없이 서로 잘 챙겨가며 행복한 가족여행을 완성시켜 간다. 아직 바이칼까지 가기는 멀고도 험하지만, 내가 별 걱정을 안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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