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우리 칸의 화장실이 2개였구나. 차장 언니가 근무하는 쪽에도 화장실이 있었네. 그리고 훨씬 더 깨끗하네. 왜 몰랐을까. 떠나기 전에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탓이다. 열차에 타고나서도 더 꼼꼼하게 훑어봤어야 할 일이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그러나 아주 단순한 정보에 불과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의 자괴감이란!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의 화장실만을 바라보고 자기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만 왔다네. 방광염에 안 걸린 게 다행일 정도로.
무지는 이처럼 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때로 삶의 자존감도 빼앗고 만다. 물론 앎 이후의 삶은 우리 가족에게 멋진 신세계였다. 고작 화장실 하나 더 늘었을 뿐인데.
열차의 전기가 모자라는지 휴대폰 배터리 충전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충전기를 꽂을 데는 세 군데지만 작동을 안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차장 언니가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갑자기 내게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순간 저런 얼굴로 왜 부를까 섬뜩함을 느꼈다. 따라가 보니, 기계실에서 뭔가 조치를 취해 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와, 정말 고맙네.
미니마켓이라 불리는 진열대에 맥주며 컵라면을 자주 사가면서 약간의 친분이 쌓였던 걸까. 차장 언니랑 통했다며 내가 싱글벙글 하니 아이들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쳐다본다. 남자가 여자에게, 그것도 할머니를 왜 언니라 부르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나는 계속 흥얼거렸다. 고마워요, 차장 언니!
그래, 흘러가는 대로 잠시 지나가면 모두가 평온해진다. 애써 서로에게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는 이르쿠츠크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이렇게 떠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닌가.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며칠째 푸시킨의 시집을 들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시베리아 평원에서 그에게 빠져드니 어느새 내 영혼은 위로 받은 작은 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던 그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보상은 모두 내 안에 있고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심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