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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Dec 26. 202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무지가 주는 불편함    


앗, 우리 칸의 화장실이 2개였구나. 차장 언니가 근무하는 쪽에도 화장실이 있었네. 그리고 훨씬 더 깨끗하네. 왜 몰랐을까. 떠나기 전에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탓이다. 열차에 타고나서도 더 꼼꼼하게 훑어봤어야 할 일이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그러나 아주 단순한 정보에 불과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의 자괴감이란!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의 화장실만을 바라보고 자기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며 참아만 왔다네. 방광염에 안 걸린 게 다행일 정도로.


무지는 이처럼 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때로 삶의 자존감도 빼앗고 만다. 물론 앎 이후의 삶은 우리 가족에게 멋진 신세계였다. 고작 화장실 하나 더 늘었을 뿐인데.        




고마운 차장 언니  

  

열차의 전기가 모자라는지 휴대폰 배터리 충전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충전기를 꽂을 데는 세 군데지만 작동을 안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차장 언니가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갑자기 내게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순간 저런 얼굴로 왜 부를까 섬뜩함을 느꼈다. 따라가 보니, 기계실에서 뭔가 조치를 취해 내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와, 정말 고맙네.    


미니마켓이라 불리는 진열대에 맥주며 컵라면을 자주 사가면서 약간의 친분이 쌓였던 걸까. 차장 언니랑 통했다며 내가 싱글벙글 하니 아이들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쳐다본다. 남자가 여자에게, 그것도 할머니를 왜 언니라 부르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나는 계속 흥얼거렸다. 고마워요, 차장 언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그래, 흘러가는 대로 잠시 지나가면 모두가 평온해진다. 애써 서로에게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우리는 이르쿠츠크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이렇게 떠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닌가.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며칠째 푸시킨의 시집을 들고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시베리아 평원에서 그에게 빠져드니 어느새 내 영혼은 위로 받은 작은 새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던 그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보상은 모두 내 안에 있고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심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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