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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Dec 26. 2020

횡단열차 3일째, 바이칼이 보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힐로크(hilok) 역을 지나니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 바이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들이다. 356개나 된다는 그들을 하나둘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열차도 이 역을 기점으로 더 이상 연착되지 않았다. 바이칼로 가까워질수록 거짓말 같이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바이칼을 영접한다는 경외감이 커질수록 나는 또 지나온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이 막 그리워졌다.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먹고 자고 일어나고, 아이들과 까르르 웃을 때나 소주 한잔에 지난 스트레스를 다 푼 것 마냥 흔쾌해 할 때 차창을 보면 항상 너희들-내 자식 새끼 같은-이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초록숲과 하늘빛을 떠받치는 길고 곧은 흰 줄기 나무들의 행렬. 계속 눈에 들어올 땐 몰랐는데 새로운 것들에 그 자리를 내주니 이제야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베리아는 오랜 유형의 땅이었다. 멀게는 12세기 칭기즈칸 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가깝게는 19세기와 20세기, 차르 정부가 볼셰비키 당원들을 내쫓고 강제노동을 시킨 역사가 있다. 왜 레닌도 청년시절 3년을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로 보냈다지 않나. 그들이 떠나간 시베리아 벌판과 오늘의 것이 하나도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는 지나갔지만 사라진 게 아니라, 가장 아름답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바이칼 앞에서는 모두가 하나

   

울란우데(ulan ude') 역을 지나 조금 더 달리니 이제는 바이칼의 온전한 모습을 다 보여준다. 객실의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바이칼을 바라본다. 그리고 사진을 연신 찍어댄다. 러시아 사람들인데도 바이칼은 볼 때마다 새로운 모양이다. 우두커니 서서 무표정하지만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모양새가 똑같다. 어쩌면 그들에게 바이칼은 어머니 대지의 젖줄일지도 모르겠다. 보고만 있어도 평화로워질 테니.

우리 가족도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다만 러시아인들과 다른 게 있다면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들뜬 마음으로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는 점이다. 261km 연안을 따라 달리는 열차.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탄 사람만이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풍경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3일째, 바이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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