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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우 Dec 26. 2020

여행은 분리다


맥주,

맥주,

맥주를 달라


약간의 소동 끝에 호텔로 들어섰다. 아, 얼마 만에 만끽하는 샤워인가! 이미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섰지만 애들도, 우리 부부도 욕조의 물에 환장할 듯 뛰어들었다.

그리고 나의 마른 목은 맥주를 절실히 원했다. 호텔 데스크에는 늦은 시간에도 우리를 맞이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런데 그에겐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떤 문장도 아니고 단지 한 단어, 비어(beer)조차 모른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었다. 결국 그에게 구글 번역기를 꺼내놓는 번거로움 끝에 맥주를 3병이나 시키게 되었다. 이르쿠츠크의 첫 날 밤을 그렇게 보냈다. 맥주를 너무 많이 샀다고 아내에게 욕까지 얻어먹으면서.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러시아. 우리도 잘 못하는 영어지만 원, 투도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 현지어를 모르는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의사소통에서 적지 않은 불편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여행객의 입장일 뿐이다. 러시아에서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동서냉전의 양대 축이었던 미국과 소련. 러시아의 과거였던 소련의 입장에서 영어는 배척되어야 할 적국의 언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월이 바뀌었다고 호들갑스럽게 영어를 추종하지도 않는 러시아. 자존을 지켜가는 문화는 오히려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꿋꿋하게 비어(beer)를 외면하며 러시아어로 대응한 저 직원이 아름다워 보인다.        




여행은 분리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지금까지 일어난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는 오직 오늘을 위해 준비된 여행의 악서세리쯤이었다고 친다. 우리가 꿈꾸어온 바이칼로 들어가는 시간, 이르쿠츠크의 싱그러운 아침이다.    


힘들어서, 또는 힘들지 않아도 노동과 생활의 스케줄이 쉼 없이 돌고 도는 24시간의 세계를 한번쯤 박차고 나가는 일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여행은 그 수단이며 다른 내일을 향한 인위적 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멀리 떠나올 때마다 우리 가족은 항상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오곤 했다.


사회운동가로 살면서 조국과 민중의 해방이 아닌 나의 해방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고뇌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는 많이 힘들었나 보다. 또 그런 나와 함께 살아오며 고생한 아내 그리고 아직도 응석받이인 두 아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온 일상을 한번쯤은 뒤집고 싶었다. 그래야 더 나은 내일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이런 마음을 지닌 채 미지로 떠나는 여행의 팀이 되어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은 참으로 행복한 경험이었다. 유럽과 아시아로 자유롭게 떠난 지난 여행들이 다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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