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르쿠츠크 역에 내렸다. 이로써 3박 4일의 여정, 우리 여행의 전반기가 끝났다.
우리 가족은 가장 먼저 차장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기념사진을 함께 찍고 내린다. 그리고 또 한 명 인사해야할 사람이 있다. 헬로걸이었다. 우리 방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더니 시종일관 헬로를 외치고 사라져버린 아이. 그걸 이틀 동안 반복했는데 우리는 걔를 헬로걸이라 불렀다. 태민이의 관찰로는 러시아 아이란다. ‘스파시바’라고 말하는 걸 봤고 영어로 되물으면 사라져 버리기만 하였으니.
확 트인 6인용실과는 다르게 4인용실 쿠페는 가족끼리 지내기는 좋지만 이웃 여행객들과 친해지기는 어려운 구조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헬로걸은 그 중 몇 안 되는 우리의 친구였다. 그도 떠나고 우리도 떠나지만 이국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쉬 잊지 못할 것이다.
역에 내리자마자 우리는 다음날 아침까지-고작 몇 시간이었지만-오랜 기차여행의 피로를 풀게 될 호텔로 이동해야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안전하게 택시 타기다. 바가지를 썼다거나, 한밤에 이상한 데로 끌고 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협박을 당했다는 사례들을 읽어온지라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의 택시 타기는 대단히 중요했다.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르쿠츠크 역을 나와 그동안 준비해 놓은 막심 택시 어플을 켰다. 그런데 맙소사. 자동으로 연결되는 줄 알았는데 거칠 단계가 둘이나 더 있다니. 현지 통신사에서 내 휴대폰에 할당한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전송되는 인증번호를 입력하는 절차였다. 한국에서야 여러 번 해 본 일이고 현지에서도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덩치 큰 청년 ‘놈’들이 택시, 택시 하면서 우리 가족을 둘러쌌다. ‘노, 노’를 외쳤지만 계속 알아듣지 못할 말을 퍼붓는다.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이 이어지며 마음도 다급해졌다. 그때 아내는 천천히 하라며 시간을 주었다. 태민이도 위기를 느꼈는지 도와주었다. 12살 아들이 마구 고마워졌다.
어렵사리 러시아 여행 블로그를 이리저리 검색했고, 가르쳐주는 대로 유심 칩 카드를 빼내 살펴보니 내게 할당된 현지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인증번호였다. 메시지가 와서 눌렀는데 입력해야할 번호는 뜨지 않고 자꾸 알아듣지 못할 억센 영어 콜이 왔다. 그러다가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이제 모든 게 해결된 듯했다. 우리의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고 나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면 끝이다. 그 덩치들이 뭐라 뭐라 하며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렸어도 당당하고 냉정하게 ‘노, 땡큐’로 응대했다. 그들이 알아먹든 말든.
조금 있으니 우리 앞에서 택시 하나가 빵빵거리며 손짓한다.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안도하며 짐을 싣고 애들을 태웠다. 이제 됐구나 싶었다. 그런데 믿었던 이 자가 차를 계속 이상한 데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 목적지인 호텔을 검색해 켜놓은 구글 맵이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당할 상황이었다. 결국 140루블만 주면 될 것을 500루블을 주고 내렸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완벽히 속은 거였다. 그는 우리가 신청한 택시기사가 아니라 콜을 가장한 사설택시였던 것이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막심 택시라 우겼는데 아내랑 애들은 믿지 않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