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아픈 사랑問
이별은 사랑을 요구하지 않지만, 사랑 속에 이별은 필수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가. 사랑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나. 사랑이 구속이기 때문이다
다. 사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라. 사랑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스럼:
가. 사랑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해는, 그야말로 불완전하다. 그대의 사랑은 완전하다. <완전>이란 개념이 그대가 가진 태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은 불완전해 보여도 그대의 사랑은 불완전을 용납할 수 없을 터다. 평소 타인의 것이라면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행동, 태도 같은 것들에도 단지 그의 몸짓이기 때문에 그 몸짓 하나하나에 <온 세상을 얻거나 잃은 듯> 고민할 정도로 완전함을 추구하는 게 그대의 사랑이다.
나. 사랑이 구속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다. 친구는 가까이 두고, 적은 더욱 가까이 두라고 하듯이 (Keep your friends close, keep your enemies closer. _ Mario Puzo, The Godfather.) 마치, 이별 없는 사랑을 위한 배려인 듯하다. 삶에 죽음이 있듯이 이별이 사랑과 함께 있다.
감정의 결박 상태가 사랑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구속이다. 풀리지 않는 멍에와 같다. 그것을 완화하기 위한 지렛대로 이별을 끼워둔 모양새다. 이별해도 좋은 <그와 그대>가 사랑에 빠져있는 즐거움은 꽤 달다. 느닷없는 이별로 깊게 앓을 걱정도 없다. 우연히 다가온 만남처럼 우연히 이별을 맞을 때도 좀 더 고상할 수 있다. 이별은 사람을 앓는 것일 뿐, 사랑을 앓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구별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랑이 이별에 필수라면, 이별이 쓸모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다. 사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대일 뿐, 현실은 파랑새를 찾는 것과 같다. 사랑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사랑에 빠진 뒤의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그대가 갖고 있는 한 불가피한 사랑은 없다. 피할 수 없는 거라고 우기고 싶어 진다. 그 조각된 <어쩔 수 없음>이 그대가 하는 사랑을 달콤하게 한다. 그대가 사랑을 즐기는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라. 사랑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사랑은 배워야 할 만큼 어렵지 않으며, 사랑에 빠지지 않은 이에게 사랑을 가르쳐줄 정도로 너그럽지도 않다. 예습은 없다. 여섯 살 아이의 사랑도 예습이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한다. 사랑은 그렇게 하는 거다.
사랑에 관한 연구는 대개 통계학의 지식들을 이용한 심리 성향을 보여줄 뿐이다. 그대의 사랑을 특정해서 읽지는 못한다. 그대를 모르는 거다. 그도 <자기>를 가진 개체다. 그의 사랑을 배울 방법이 없다. 그대의 삶에 사랑이라면 중고가 없는 이유다.
딱지: 나. 사랑이 구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