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과 미련

사랑엔 중고가 없다

by 어뉘


미련과 미련



새 학기가 시작된 어느 봄,

윤리 과목의 첫 시간,

선생님은 창밖을 봤습니다

왼쪽의 유리창 밖에는 봄볕이

바다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과 동정의 구별이야.>


뜬금없는 한 마디였습니다

세탁을 언제 했는지 모를

양복을 걸치고, 머리카락은

검게 물들인 윤리 선생님


정년을 앞둔 그는

삶에서 마주쳤던 이들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을 듯한, 그래서

사랑에는 초연했을듯한

분위기를 가졌습니다


그는 봄볕과 바다를

내다보면서 뭔가 말을 하려다

멈추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학생들은 기다렸고,

그는 책을 펴 들었습니다


<그냥, 기억해 두고,

시작하자. 인식론은...,>


선생님은 우리가 스스로

배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 학기는 학생들이

교양과목을 만나는

마지막 학기였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설명해도

때가 되어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도 있다는 것에서

우리가 가진 삶의 일회성을

확인하게 되는가 싶습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 속

주인공의 삶을 사랑으로

읽어도 좋습니다만,

동정을 구걸한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한 게 맞다면, 데이지가

개츠비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그는 사랑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개츠비에게

<사랑한다면>이라는

전제가 참이 될 겁니다




<사랑을 위해서, 또는 사랑 때문에>

뭔가를 한다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우기는 이들이 많지만,

사랑하면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아니기에

<사랑을 위해서, 사랑 때문에>라며

사랑에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할 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