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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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자위



장터에서는 악을 쓰며

떠들어야 제 맛이고
연인과의 대화는 은밀해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걸인은 꾀죄죄함을 입어야,

그대의 손톱은 말끔해야 그럴듯하다

한편, 억수 같은 비는

장맛철에 내려야 흥건하며
단풍이 들고 나서야

가을의 맛이 나는 법이다


사막에 피는 꽃은

치열한 생명력을 가진 게 아니라

물에서는 피지 못하는 꽃이며,

한 겨울에 피는 꽃은

여름을 즐길 줄 모르는 탓에

겨울이 아니면

피지 못하는 꽃일 뿐이다

사막에 피는 꽃에게는

늪지가 지옥이겠고,

겨울에 피는 꽃에게는

여름이 척박하겠다


우리가 어느 쪽에 가치를

두는가의 문제일 뿐, 꽃은

이 꽃보다 들찬 저 꽃 없고,

저 꽃보다 나은 이 꽃 없다


꽃이 꽃으로서 꽃을 살 때

무슨 꽃인가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무슨 꽃인가를 따지는 우리가

주어진 그대로 '나'를 살 수 없는

모습은 얼핏 가엾어 보인다


노엄 촘스키의 위로가 있음에도

그게 우리 자신 탓이라는 데에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주어진 대로 살 수 없는 삶을

이윽고 살아내기에

우리가 '나'를 굳이 변명할 건 없다


'나'를 사랑하자는 것이지만,

삶이 나를 조각해온

편견에 저항하려면,

꽃을 그저 꽃으로

즐기려고 할 때와 같이,

'나'를 맨눈으로 즐기는 데도

연습이 필요한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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