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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Sep 24. 2021

이 세상은 욕먹어도 싸다

생각편의점

이 세상은 욕먹어도 싸다





사실 짊어진다기보다는 

강요되는 느낌이 

더 강하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태어나면서 

많은 의무를 짊어집니다


부모의 기대에 맞춰야 할 의무,

남보다 잘 나야 할 의무로서 우선

공부를 잘해야 할 의무,

돈을 잘 벌어야 할 의무,

가정을 이뤄야 할 의무에 더해

그것을 성실하게 건사해야 할 의무,

그래서 부모가 자식 잘 둬서 좋겠다는

말을 듣게 해야 할 의무 등

소소하게 따지면

열거할 의무는 아직도 많습니다


내가 태어난 걸 즐거워할 이가

'나'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여타 동물처럼

온전하게 태어나지 못해서,

태어나자마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우는 것 정도인데, 아니면 

배고픔을 해결할 

어미젖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앉지 못하고 그저 누워 

먹여주는 대로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삶에서는, 살려니까 

우리에게 부과된 의무를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봅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는

별별 연구의 결과와, 

입이 방정인 교육전문가라는 이들의

엄포성 말을 철석같이 믿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얼핏 봐서는, 영어를

제2의 모국어로 쓸만한 상황이

되었을 듯싶지만, 알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가능성이나 기대론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곤란하다 싶은 게,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누구는 살인자로, 악당으로,

누구는 법 없이 살 바보로

키워진 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냐는 겁니다)


어떻든, 돈 벌어서 먹여주고,

학원 보내주면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 듯한 부모에게,

학원 가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으며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받는 때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는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면서도

영어, 미술, 피아노, 

태권도, 수학, 발레, 수영 등등

수많은 학원을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그런데, 너무 바빴습니다

남들 하는 만큼 해줄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부모의 바람대로

이 사회에서 주목받는  인간이 되거나

그들의 자긍심을 높여줘야 했는데

우리는 '내' 공부를 할 시간과

'나'를 배울 시간이 늘 모자랐습니다


이제 와서 우리의 엄연한 삶은, 

하라는 대로 다 해온 '내'게, 

그렇게 살지 않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든 게 너희들 아니냐,

따진다 해도 바뀔 건 없어 보입니다

시키는 대로 한, 하라는 대로 해온 우리를 

세상이 그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욕먹어도 쌉니다


그러나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대화조차 멈춘 침묵이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무심한 악플보다 더 위험합니다

악플이 생산적이지는 않더라도

대화는 하겠다는 것이니까요

어이없는 칭얼거림이라 해도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좀 다른 

생각을 해야 할 듯합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삶과 사회구조 하에서

요즘의 우리 삶을 진단합니다만

우리가 미치겠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직 '나'때문입니다


부모의 철없는 기대와

이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 덕분에

타인의 눈으로 나를 살며, 

주위의 누구보다도 우월해야 할 

의무를 짊어진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내가 미칠 일이 없지요

하필 모든 일이 내게 생기는 이유도

'나'때문이란 건 자명합니다




결국, 모든 것에 

'나'가 있기 때문이라면

그 '나'를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면 

삶이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나'를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가 나 자신을 고민하는 건 

꽤 바보스러운 짓인 데다

모든 것을 내 문제로 삼으면

삶만 더 괴로워집니다

어쩌다 신경이 망가지면 미치고 맙니다


(우리는 이미 어떻게든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이므로

자발적인 죽음에 대해서는 

언젠가 필요할 때 말하기로 하고,

당장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넓게 봐서 우리의 삶을, 

'나'와 '너'로 지칭되는

만인 및 만물이 함부로 어울린, 

장터로 보면,

나 자신을 지지고 볶아봤자

여전히 '나'일 수밖에 없는 나보다는 

내가 다룰 수 있는 게 '너'뿐이므로 

'너'를 따지며 나를 위로하는 게

보다 자연스럽습니다


아주 비근한 예를 들면, 

책을 읽으며 쪽을 넘기고 있어도

무슨 뜻인지 잘 읽히지 않는 것은, 

'나'의 문해력이 문제가 아니라 '너'인 

그 책이 잘못 써진 것으로 봅니다

나를 이해시킬 정도가 

되지 않는 책인 겁니다

책은 내가 이해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대로 쪽을 넘기면

그만인 듯싶지만, 얼마 후

"아, 그게 그런 뜻이었어!"

하면서 읽을만한 책으로 

다시 새기게 되는 경험이

우리에게 드물지 않습니다

결국, 내 이해력에는 문제가 없었고

내게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그 책이 

내게 이해를 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위 과정에서 

내가 책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나의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책이 가진 의무, 즉 

독자인 나를 이해시켜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겁니다


이것이 수평적 사고법의 하나로서

창의성을 키우는 데에

효과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합니다만, 

나의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도 

유력한 사고방식일 겁니다


우리가 땅 위에 사는 건

지구가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미터 남짓 뛰어오르는 올림픽 게임의 

높이뛰기를 하기 위해서도

두꺼운 매트를 깔아놓아야 할 정도로

우리를 격렬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 자신에게서 

떨어지려는 걸 두려워합니다

수평적 사고로 보면, 

하도 붙잡고 매달리는 게 '가엾어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주는 겁니다


삶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갸륵한

인간애를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까짓 목숨, 언제든 버릴 수 있지만

삶이 너무 가엾어서 그 삶에

언젠가는 웃음과 행복을 안겨주기 위해 

나를 살아주는 겁니다


우리는 대개 '나'라는 주체에서

'너'라는 객체로 가는 

수직적 사고를 합니다

이 사고법이 업무나 일을 

처리하는 데는 강력하지만, 때로

객체에 치받친 '나'의 사고는

흐를 곳을 찾지 못하고, 

나를 앓게 만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이 세상을 앓는 겁니다 


연습이 필요하긴 해도,

우리가 미치지 않고, 외롭지 않고, 

괴롭지 않고, 마음을 앓지 않으려면

수평적 사고방식을 키우는 요령으로 

모든 객체에 '너'라는 인격을 주어 버립니다


우리 자신이 세상을 감내하면서 

세상에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우리가 평가하는 겁니다

 



우리는 성공을 모르고 태어납니다

태어나니까, 성공하라고 

세상이 우리를 윽박지릅니다

"나는 태어나기로 했어!"

이렇게 세상과 만나지 않는 한,

내게 성공이 필요하다면 

사회가 그렇게 해줘야지요

쓸모가 있어서 태어나지도 않으므로

쓸모도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줘야 할 겁니다


나 스스로 뭔가를 했던 것이

뭐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삶에

언제냐는 건 문제가 아니고

늦다는 말은 쓸모가 없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모르면서

남은 시간을 재고, 가늠하는 것도

쓸데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시간에서

마지막 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행복 중에는

내일을 말할 수 있고, 

예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정이 귀정이어야 할

의무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자연은 우리가 단순히 숨을 쉬고

'나'를 들여다보기만 한다고 해도

우리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연과 달리 

목숨 하나 가진 덕분에

어깨에 짊어진 수많은 의무에 눌려

기를 못 펴게 하는 

이런 세상은 욕을 먹어도 쌉니다


그대의 입에서 욕이 나오지 않는,

그것이 훨씬 더 무섭습니다

그대의 길고 유쾌한 삶을 위해서

이 세상을 욕하는 데 주저가 없는 

마음이 건강한 그대이기를 바랍니다


덕분에, 귀 아프도록 욕을 들은 세상이 

언젠가는 더 이상 욕먹지 않으려고 

자신을 개선할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욕하는 동안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위의 못된 인간과 다툼을 

한두 번쯤은 해봤을 텐데, 

시쳇말로 상대가 대거리를 할만한, 

만만함을 넘어서면 아예 

욕도 나오지 않게 되는 법이니까요


여하튼, 이 글의 주제인

'나를 사랑하자'를 강조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이것도,

또 다른 기회에 '입점'시키기로 하고

여기서는 모른 척해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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