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숟가락은 어디서 구해

사랑엔 중고가 없다

by 어뉘


그런 숟가락은 어디서 구해



사랑하는 건지,

사랑받으려는 건지를

구별하는 건 아주 쉬워요

누구 이야기를 하는지

내 입을 보면 알 수 있거든요


잘 모르는 그에게

사랑받고 싶을 때는

나 자신 이야기를 할 테지요?

하지만, 사랑하고 있다면

그의 이야기를 할 거예요

한 마디로, 사랑의 객체가

누구냐에 달린 거지요


하여튼, 내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보다

타인의 것을 받아내는 것이

어려운 건 당연하잖아요

사랑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사랑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훨씬 쉽다는 걸

그냥 알 수 있어요

사랑하는 건 내가

내 맘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받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가 나를

사랑할 까닭이 있나요?


그게, 애매하잖아요

내가 그를 사랑하니까

그도 나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떼를 쓰면

그에게 사랑이 함부로 생겨요?


게다가,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상대에게 매달리는 것을

누가 사랑이래요?

아니에요, 그런 걸

연애라고 하는 거예요


사랑에 메커니즘이 있다면

사랑이 <하는 것> 일 때

연애는 사랑 <받는 것>이거든요


배 고프다 칭얼거리면

밥이 어디서 뚝딱 나와요?

밥을 지어야지요!

그리고 한 마디 하는 거예요

<너도 먹을래?>

그래야 두 사람이 먹을 수 있잖아요


사랑하는 데는

내가 가진

사랑이면 충분한데,

연애를 하려면

그의 사랑까지 필요해요


사랑은 언제든 내가

끝을 낼 수 있는 이야기이고,

연애는 그가

끝을 가진 이야기란 말이에요

사랑보다 연애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그거예요


내 것도 아닌

그의 사랑을 앓는 건

너무 속이 보이잖아요

그래서 생떼를

쓰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사랑해 버릴 거예요

연애는 하지 않을래요

내가 왜 아파해야 해요, 그것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때문에 말이에요


그저 내가 차릴 수 있는

상만 차려놓는 거예요

그가 거기 숟가락을

얹든 말든 그건

그의 몫이잖아요

<그런 숟가락은 어디서 구해?>

내가 사랑할만하다면

그가 그렇게 물을 수 있는

인간이 맞을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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