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도구

생각편의점

by 어뉘

생각 도구



해가 바뀌려고 해서인지

모두 아는 이야기

새삼스럽게 각납니다



마음과 느낌 - 나는 그게

생각이라고 봅니다만 - 을

소통의 도구로 쓰려면

말이 필요하고 그 말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2분이나 3분 정도면

읽어버릴 수 있는

짧은 글을 씁니다만,

그렇다고 2~3분에

말하고 싶은 느낌과 마음이

써지지는 않습니다


동기가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을

말로 드러나게 하는 데는

수십 배의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아예 써지지 않을 때도 흔합니다


종종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정리는 말 그대로 정리입니다

알맞은 단어를 찾을 때까지 말이

보이지 않으면, 생각이 막힙니다

그러다가 찾으면 뚫립니다

적절한 게 보이지 않는데도

어떻게든 써내려면,

생각은 이미 알고 있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

'자신의 말'을 만들기도 합니다


탁월한 성찰이나

명문을 쓰기 위한 게 아닙니다

그저 생각을 정확하게

대신하고,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도구를 찾는 겁니다

생각은 자기 확인 기제로서

말 그대로

온몸 감각세포의 수만큼

무한정 확장되지 않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안타깝게도 우리는

갖고 있는 어휘만큼 생각합니다

갖고 있는 어휘를

넘어서는 생각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갖고 있는 어휘만큼

타자의 말을 이해합니다


어휘를 넘어선다고 해봤자,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

아니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

하는 정도인데, 이 말은 대개

상대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는

궁색한 변명에 쓰입니다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시어(詩語) 한두 개 만드는

시인을 독자가 받아들이는 건

그 덕분일 겁니다, 비록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지요


달리 말하면, 생각한다는 건

낱말 퍼즐의 빈칸에

알고 있는 모든 어휘를 하니싹

대입해 보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이 복잡하다"는 건, 그래서

시쳇말로 대개 사기로 봅니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이 섞여

정리하지 못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생각을 명확히 드러낼

단어를 떠올릴 수 없다는 겁니다


회화나 그림도,

수학도 마찬가지인데,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그림이 말의 시작인 겁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두뇌에게 필요한 단어를

찾게 하는 것이며,

느낌이나 사실을 구체화할

단어를 찾는

두뇌 운동을 우리는

'생각한다'라고 합니다


심지어 "생각도 안 하고"

저질러 버렸다고 하는 말도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생각하기엔 늦다고 생각한 겁니다

두뇌 속에 "생각하면 늦는다"라고

단어를 조합해야 행동이 됩니다


그런 뇌가 합리적이려면,

그 생각을 정리해 줄 풍부한

어휘가 필요합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란, 결국,

어휘가 풍부해서

필요한 어휘를 어렵잖게

찾아내거나 만드는 사람일 겁니다



생각과 달리, 사랑에 빠져서까지

굳이 합리적일 필요는 없습니다만,

모든 학문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진 당신이

사랑을 장식하는 데에 말보다

더 나은 도구는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말로 사랑을 시작하고

그 말로 사랑을 끝냅니다


우리 자신은 잊고 있지만,

우리가 갓 태어난 아기로서

원하는 얻는데 쓴 것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울음소리' 하나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가진 어휘는

그것밖에 없기도 했지요

우리는 그걸로 살아남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굳이 사랑이

고상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랑하는 데도 사랑을 꾸밀

사랑과 말이 필요하고

사랑하지 않으려고 할 때도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랑과

그걸 정리할 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새해에는

잠도 잘 자고 쓰레기들이

유쾌하게 정리되어,

사랑에 빠지지 않는 한

그다지 많은 어휘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휘가 많이 필요 없다는 건,

마치 어린아이의 하루처럼

그다지 생각할 게 없는 것이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알다시피, 우리가 불행할 때는

대체로 어른일 때이며

거기엔 많은 단어가 필요하니까요


행복한 이웃집 문안에서는,

'하하하!' 웃음소리가

흔히 들릴 뿐 조용한데

불행한 이웃집에서는

뭔 소리인지 모를, 그러나

날카로우면서 목멘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듯이 말입니다


유쾌한 한 해를 즐기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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