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불러주기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
내 머릿속이 꼬이거나
가슴이 붓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한 거라고 여기다가, 문득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나를 사랑하는 건가 싶었다
처음 당신에게 나를 보여줬을 때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든 것을 당신의 눈에도,
내 입에 든 것을 당신의 입에도
내가 즐긴 것을 당신도
느끼게 하려던 것도 그건가 싶다
나를 당신 속에 넣어두려던 건
사랑하는 당신보다는
내가 소중했던 까닭일 터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당신 속에 들어 있는 내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내가 아닌 것처럼 꾸미는 모든 것은
나를 함부로 잊지 않도록
당신 속 어딘가에 남 다른
생채기를 만들려는 획책이 아닌가 말이다
내 속에 내 멋대로 그려놓은
당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려놓은 당신을 내게서 확인하고
<아, 이게 운명, 인연이라는 거구나>
당신 자신은 생각지도 않던 당신을 그린
놀라운 재능을 가진 나를 놓칠까,
겁이 나기도 할 건가 모르겠다
이윽고 세상을 다 얻은 듯,
또 하나의 당신을 가진 듯
내게 빠지면, 때로
'자이로-드롭'을 타고 떨어질 때처럼
서늘한 달콤함에
가슴을 맥없이 쓸어내리며
나처럼 잠을 설칠지는 모르겠다
그걸 나를 사랑하는 증거가 아니겠냐고
당신이 아무리 주장해도 나는
씩 웃고 지날 건데, 흔히 '의미'라는 게
'내가 너에게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이고,
그 답이 사랑의 대상이 되잖던가?
그래서, 당신 속의 내가 싫을 때
나는 그렇다고 말할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해주는 게
당신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본다
당신이 야속하다거나
잔인하다고 하지는 않을 테다
결국 당신은 내가 아닌,
당신을 버리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