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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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사랑할 자유




내가 하는 짓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모든 것이 자연 그 자체이며,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도 없이

나는 있지만 자아가 없는 때,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던 그때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많은 애정과 관심,

나아가 사랑을 받았을 겁니다

우리의 유아기입니다


그것에 견주면, 현재

세상 물이 제법 든 우리가

사랑받기는

글렀다고 봐야 합니다




잃어버린 순진무구 대신, 우리는

나를 꾸미기 시작하는데,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든지

사회에 대한 예의라든지

많은 핑계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 사랑을 만들겠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너, 나를 사랑하지 마, "

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너, 나를 사랑하도록 해, "

라고 하는 건 바보 같습니다

신이나 하는 소리를

사람이 하면 바보처럼 보입니다

뭐든 주장해온 신과 달리

사랑할 자유를 가진 주체가

서로 다르다는 걸 우리가 아는 겁니다




우리가 사랑할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은

기대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쉽게 말해,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운 것일 테지요


'그는 그대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워할 건, 오히려 그대가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과

그대를 모르는 그가

밑도 끝도 없이 그대를

사랑하는 걸 겁니다


어떤 인연이든 인연이 시작되고

지나갈 때까지 서로 모르는, 알아도

나 자신만큼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으면

사람과 사랑을 지지고 볶습니다

그대 역시 그에게 남이었고, 영원히

남으로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대가 사랑할 자유를 가졌다면

그는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가집니다

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그대에게, 말하자면, 느낌이 없을뿐

그대라는 사람을 무시한 게 아닙니다

그는 그대의 고백으로,

한 순간이나마 즐거울 텐데,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즐거운 것일 뿐

'그대'를 거부해서 즐거운 건 아닙니다


그는 사랑을 받았고, 그것으로

사랑은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봅니다

그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게 그대의 탓은 아닙니다


폴 블룸(Paul Bloom)의 말처럼,

우리는 '내'가 아는 만큼 사랑합니다

BTS의 팬덤인 아미에게

조용필에의 열광을 기대할 수 없고,

존 바에즈에게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테일러 스위프트에게도 그렇게

해 달라고 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그 역으로도 마찬가지인데, 대개는

그와 그대의 역사가 문제입니다


똑같은 새 인형을 쥐어주어도

실밥이 터져 너덜너덜해진

안정인형을 놓지 않는

아이의 애착처럼, 사랑은 사적인

자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는'으로 한정한 건

내가 모르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건 그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은 이유이고,

수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가

말하게 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더하면,

우리가 동물적 감각을 많이

잃어버리긴 했습니다만,

우리의 눈은 생존 본능에 따른

상황 파악과 아주 사소한

거짓과 진실을 읽는 재주를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대의 눈을 보며 말하게 하고

그대의 가슴에 거리낌이 없다면,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사랑한다 말해야 할 겁니다

대개의 경우, 그 말과

눈빛이 일치하면 포옹을 부르는

즐거운 '폐단'이 따르기는 합니다만)




유아기를 지나 사랑받기에는

벌써 그른 우리에게 남은 건

사랑하는 것뿐일 겁니다

구석구석 구조된 이 사회의

사람살이에서는 흔치 않은

자유와 함께 말입니다


살면서 꼭 어른이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는 못하겠지만,

나이는 어른을

만들지 못할 수 있어도

사랑은 흔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어른이란 사랑받는 사람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된

그대를 일컫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되기 어려운 이유에는,

삶이 만만치 않은 데다

유아기에 대한 귀소본능 탓도 있을 겁니다


덕분에 그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드는 그가 어른이긴 해도, 그도

사랑받는 걸 마다하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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