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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un 17. 2020

'그럭저럭'이 나빠요?

생각편의점

'그럭저럭'이 나빠요?




대개 세상에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고 태어난 우리는, 단순히 산다는 이유로, 그럭저럭 살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뭐라 하든, 그 욕구는 행복을 가까이 두지 않는다. 추구할수록 행복이 더 멀리 가는 이 구조를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으로 봐도 될 듯싶다. 


사실, 먹고,  싸고, 자면 삶은 흘러간다. 거기에 '내'가 끼어들면,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진다. 현재를 품고, 더 잘, 또는 좀 더 멋지게 살겠다고 작정하면서 현재는 모자란 삶이 된다. 내가 나의 불행을 작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정한 성취로 인해 행복하다 싶은 순간, 우리는 그것을 일상으로 치환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 동물인 거다. '천국'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한 이유다. 여기까지 오면, 그럭저럭 살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이 보이지 않는 반면, 일상 자체를 행복이라 불러야 할 당위가 보인다.  '맘먹기 나름'이란 말이, 그래서 통쾌하다.



그대가 불행한 건 그대가 그대를 들볶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대가 불행할 이유가 없다. 세상이 그대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그대는 자존감이 부족하다. 세상이 아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그대가 세상을 가만 놔두지 않으려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대가 세상의 전부다. 



적절한 예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 얘길 잠깐 하자.


길에 나설 때, 나는 무엇에든 반하기로 하고 있는데,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다. 그에게 나를 알릴 필요가 없으므로, 나는 반하기만 하면 된다. 그는 딱히 사람이어야 할 건 없지만, 배냇저고리를 입은 아이일 수도 있고, 삶이 온 길을 얼굴에 잔뜩 그리고 있는 노년일 수도 있다. 


반하지 못하면, 나는 건조해진다. 텅 빈 감정으로 거리를 지나는 건 아쉽다. 그곳이 어디든 언뜻 반한 이와 잠시 머무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고, 좀 더 즐겁다. 그가 그의 길을 간 뒤에는 또 반할 만한 다른 그를 찾는다.


나 스스로 찾은 그의 매력을 즐기는 것이니까, 사적인 나를 즐기는 거다. 그는 그의 매력을 준비할 게 없으며, 내가 반할 무언가를 자랑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그의 매력은 내가 찾아낸다.


그것이 내게 행복이 되는 이유는, '그와 내게 인연이 있다 해도, 오늘이 그 인연의 시작이 아니어도 좋다'는 여유 때문이다. 어찌 보면, 회자정리(會者定離)와도 통한다. '그럭저럭'이 행복이 되는 건 그런 일상에서 시작된다. 


여하튼, 혹시 길을 가다가 나를 봤는데, 내 눈빛이 다정하다면, 내가 그대에게 반했고 그대는 그대가 잘 모르는 그대의 매력을 내게 들킨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 (물론, 내가 반한 이가 그대가 아닐 때는 무심한 나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스쳐 지나간다 해도 아쉬울 건 없겠다. 인연이 있다면, 그것이 그대와 나를 가만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큰 기대 없이, 내가 반할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를 즐기기 위해 길을 나선다. 길은 나를 어딘가로 가게 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삭막하다. 누가 나의 행복을 위해 그 길위에 기다리고 있을까?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마른 가슴끼리 스치면 찰과상을 남길 뿐이다.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건, 촉촉한 가슴을 준비한 나 자신밖에 없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행복이 정말 잘하는 일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그것 이외에, 행복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행복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도록 놔두지 않는다. 이것을 거꾸로 보면, 행복이 기분 나쁠 때는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가 된다. 그렇다면, 일상의 '그럭저럭'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 따로 있겠느냐, 그거다. 





코로나-19, 그 언저리에서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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