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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y 15. 2020

생각편의점 청소 1

생각편의점

생각편의점 청소 1



사랑엔 사랑마다 지문이 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대개, 지금도 쓸데없는 이유다. 지금의 사랑은 그때의 사랑이 아니며, 그대 자신도 그때의 그대가 아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알고 있는 게 그대에게 도움이 된다면, 마음속으로 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좋겠다. 그대는 아직 그때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재의 그를 그대의 사랑을 위한 실험용 모르모트로 삼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그대의 사랑은 중고다. 언젠가는, 시쳇말로 '차이는 데에 이력을 가진' 그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사랑이 경험일 수 있다면, 인간은 사랑을 대상화했을 터이고, 어떤 학원이든 필수 과목으로 강의가 개설되었을 터다. 그렇지 못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해보는 것이 아니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소설, 드라마, 영화로 사랑을 배울 때는 그 속의 인물이 그 이야기에 종속된 캐릭터로서, 그 이야기 속에서만 개성을 가지므로 그대 자신만큼 자유분방할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한다. 그대가 사랑하는 그는 그대가 쓴 각본에 맞게 조작되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다. 그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절대 객관 할 수 없다. 그대가 그를 사랑하는 한.


사랑에 실패가 있다면, 그대가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는 하나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 소리냐, 사랑한 게 맞거든!" 그렇다면, 그가 아니라 그대 자신을 더 사랑한 탓이다.


우리가 가진 건 사랑할 자유와 사랑받을 자유다. 다만 받는 것은, 말하자면, 수익자 부담이다. 받은 만큼 게워내야 한다. 그대의 취향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럴 경우 대개, 그의 사랑에 구속되어 사랑을 구걸하게 될 텐데, 비추천이다. 그렇게 해서 사랑의 주인이 사랑받는 이가 아니라, 하는 이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장점이 있긴 하다. 좌우간, 그건 훗날의 이야기이고, 당장은 제법 마음을 앓아야 한다. 정말 그럴까 싶겠지만, 길게 보면 사랑은, 하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 속에서 사랑은 필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 사랑해야 한다. 안 해도 되는 것들 가운데 우리를 따분하게 하거나, 즐겁게 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잖은가? 흔히 가성비를 이야기하는데, 아무런 수고가 필요 없는 심로(心路)만 따라가면, 그야말로 본전 이상의 즐거움을 뽑는 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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