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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y 29. 2020

매혹 2

생각편의점


매혹 2




그가 일하는 동네에 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으므로

내가 그에게 만날 장소를

잡게 한 건 자연스러웠다

그는 내게 그의 사무실 근처, 

별이 몇 개 붙은 호텔

커핏집을 알려줬다


업무를 보고 있던 그보다는

내가 먼저 도착했는데,

막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도떼기시장이었다

호텔의 창밖은 널직한

로터리와 맞닿아 있었고,

높은 천정을 가진 1층 로비의 

지붕에 있는 커핏집은

유리로 막힌 창을 제외하면 

내부의 벽이 없는 개방된 구조였다


뭔가 흔한, 우아하달까,

그런 분위기는 없었고 

다닥다닥 붙여놓은 좌석 사이의

좁은 공간마저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말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특별한 행사가 있었나 했다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럴 줄은 몰랐어요."

자리에 앉은 그가

블라우스와 치마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유리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자동차들이 장난감 같았다

마침 해가 지고 있는 때여서,

자동차들은 불빛을 받아 등짝이 

반짝이는 무당벌레로 보였다

오히려 창밖이 고요한 듯했다


"커핏집 구경 온 건 아니니까요."

내가 말했다

찰진 고상함을 생각하고 

고른 곳이었을 터다


호텔에 별다른 행사는 없었고

그와 내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창가가 아닌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매혹은 생소한 일을 해낸다

지나고 보니, 매혹은

그와 나의 대화를 훼방하는 

모든 것을 잠재웠다


1층 로비에서 올라오는

어수선한 소리를 포함, 

사람과 물건이 만드는

모든 소리를 막아주고, 

밤이 깊어져 사람 수가 줄고 

찻집이 휑하게 비어,

오히려 그와 나의 대화가 

그곳을 채울 때까지

그와 나를 그와 나만의 

고도(孤島)에 남겨줬다


그와 나의 대화가 너무 커서

시끄럽다는 지적이었거나,

하루 장사를 마감하려는데,

그만 나가 달라는 

웨이터의 시위였는지 모르겠다

빈 유리잔들 부딪는 소리가

갑자기 서먹하게 들리는 바람에

그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 큰 커핏집에

손님은 그와 나뿐이었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썰렁해진 자리들만 보였고,

창가의 조명은

듬성등성 꺼져 있었고,

아래층의 로비도

시간을 잔뜩 먹어

어두워진 듯했고,

고개를 빼고 본 창밖에

무당벌레들이 드문드문

다니는 것이 보였다


고도에 갇혔다고 모두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지만,

매혹이 만든 고도에는

갈등으로 범벅이 된 

막장드라마도 없는 법이다


내가 그를 본 것은

그 일주일 쯤 전, 사람들속에

섞여있던 모습이었고, 

그와 처음 말을 나눈 것은,

그의 회사 사무실 번호를

마침내 찾아내고

어디서 볼 수 있냐는

채 1분도 되지 않는

전화를 했을 때였다


그런 그와 나는 커핏집을 나와

사랑에 빠진 걸 알았는데,

오래전에 그래야 했던 것 같았다

별일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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