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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un 26. 2020

위로가 필요해서

생각편의점

위로가 필요해서



내가 때로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것은

'나를 너무 잘 알아서'라는,

그 이유밖에 없는 듯하다


인간처럼 영리한 동물이

사춘기를 건너며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알고 난 뒤라면,

자신이 싫어지는 것도 

유별난 일이 아닌 듯싶다 


그게 싫다는 게 아니다

어쨌든, 나밖에 없는데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란 거다


내가 나를 좋아할 

길을 찾아야 한다


'나'를 의식하는 한

나를 싫어하지 않을 정도의

나를 갖는 건 불가능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처럼

몽매는 어떨까 싶지만,

말이 그렇지, 내가 나를

망각하는 건 벌써 글렀다


마음이 뻔뻔해지는 것은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낭패감의 표출일 텐데, 그때면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고,

물귀신 작전을 펼치는 자신이

대견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인간이 그런 걸,

즐기는 수밖에

인간으로 태어난 게 

그렇게 큰 죄냐?"


"그대가 못 보는,

그대가 나를 사랑할 만한 

나의 완벽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닌가?"


"나는 너를 싫어하지만,

너는 나를 좋아해 달라고 하는 게

인간인 걸 모르는 거냐?"


"나는 한 번도 인간이 

아니기를 바란 적 없다

그게 과연 질투를 할 일이냐?"





 

코로나-19에게 응석을 부리려던 건 아닙니다. '나'의 입장에서 인간다움을 진짜 싫어하는 게 인간일 수 있으므로, 흔한 자기 합리화가 약이 아닌가를 썼는데, 쓰고 난 뒤 훑어보니,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인간을 비판적인 냉정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코로나-19가 인간이 가진 오만과 무지 등, 약점을 거의 다 드러내게 하고 있지요. 오직 만화와 영화로만 만나는, 영웅이 드문 시대여서 인지 모르겠으나, 몇 개월의 격리로 <코로나 블루>라는 심리적 상황에 놓인 분들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어쨌든, 들은 바에 따르면, 청년에게는 코로나-19 감영으로 인한 치명률이 한참 낮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염되면, 죽는 게 낫겠다 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 바이러스의 공격을, 명을 달리 하지 않는 한 견뎌야 하고, 그로 인해, 완치 후라 해도 호흡기뿐 아니라, 신체의 각종 장기에 남긴 바이러스 흔적이 평생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생체 나이가 들었다면, 할 수 없이 개인 방역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고, 젊다면,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백신이 출시될 때까지는. 제멋대로 흘러가는 세월이라 해도, 그 안을 살아갈 수많은 날에 당신에게는 늘 당신이 필요하며, 무시로 당신을 사랑하게 될 수많은 당신의 인연은 무슨 죄가 있겠나 싶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요즘 만큼,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게, 너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서사를 이해하기 쉬운 때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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