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Jul 01. 2020

매혹 3

생각편의점

매혹 3





내가 뭔가를 감추는 데

미숙한 탓이기는 하다

"그렇게 보지 말아요."

'그렇게'가 뭔지 모르지만,

내 눈이 그를 따라다니는 걸

그는 알고 있었으며, 내게는

'그렇게' 보는 것 이외에

달리 그를 보는 방법이 없었다


마침내, 그가 자신의 

눈의 깊이를 가늠케 할 정도로

나를 마주 봤는데, 그 눈은

'괜히 피하느니 

마주 보는 게 편하다'는

그의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언제부턴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몇 번 실험까지 헤서

왜 돌아서면 섭섭한 건지

이유를 알았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너를 

자꾸 마주 보는 거예요." 

그런 그 자신의 태도가 

그를 즐겁게 한다고도 했다

그런 건 처음이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그의 눈을 따라다니며

맞출 필요가 없어졌고,

마주 보며 말하는 그의 눈이

늘 삼삼하다는 걸 알았다

흰자위에 짧고 희미한 

실핏줄 무늬가 보일 때가 있고,

홍채, 그 안의 눈동자가

블랙홀처럼 뭐든 삼킬 듯 깊었다

그저 깊이가 보이지 않는

검은 점이므로 들어갈 수는 없고,

그를 모두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수 었있다

그러다, 나 자신이

최면당하는 느낌이 되어,

그 눈동자 안에 뛰어들면 

그를 모두 알게 될까 싶어 지고,

'이 사람, 사랑스럽다'라고

새삼 생각하게 되는데, 그가 정작

어디 있는지, 또는 누군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나는 틀을 가진 업무

조직의 중간관리자였으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었으므로

무언가에 푹 빠질 리 없었고

맨 정신으로 사람에게 

매혹된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잘 몰랐다 


어쨌든, 그가 나를 마주 바라보며

갖게 된 쾌감은, 나로서는

훨씬 이전부터 느끼고 있던 것인데,

해방감과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 역시, 그를 애정 하는 내게 

그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확신에서 온 게 아닐까 싶다

나중에 갖게 된 생각이지만,

나의 응시에 자신을

감추지 않을 뿐인

수동적 해방감이지만

정도와 성질이 다를 뿐

그 즐거움은 일종의 관능,

또는 성적 쾌감과

그 성격이 같은 게 아니었나 싶다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쓰이는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것도

사회적 처지와 위치, 체면, 성적 정체성 등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 너와 나를

배타적으로 공유하면서 갖게 되는 

둘만의 해방감을 의미한다고 본다


매혹은 왜 

손을 잡느냐고 묻지 않았고, 

손 한 번 잡는 것이 

뭐, 어떠냐는 생각도

내 생각 속에 넣어주지 않았다

그와 내가 느낀 건 그저 서로의

눈빛뿐이었고, 그게 달았다

그는 소중했고, 사랑스러운 이였다


그러나, 나를 마주 보는 게

즐겁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내가 마냥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내 눈을 마주 보지 않은 동안은

내가 그를 좀 더 즐길 수 있는

많은 한 때와 기회를 앗아간 거였다

"미안해요. 먼저 물어볼 걸."

내가 넌지시 말했을 때 그는

전혀 미안함은 보이지 않고,

맹랑한 말투로 말했다

오히려 시혜를 베푸는 자의

자부심을 잔뜩 갖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예요."


동물이 *자기 연민을 모르듯이

아기에게서 자기 연민은 물론

수줍음을 본 적이 없다

아기는 요람 속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은 

그의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 성장하기 전

동물로서의 순수를 가진다

그 순수는 인간이 되어 치심(恥心)을

갖게 될 때까지 이어진다


그대가 누군가의 앞에서 

수줍음을 보이는 것이,

그와의 관계에서 

그대 자신이 순수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이라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말 그대로, 순수는

수줍음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마침내 여우비처럼 말했다

"미안하다고 해줬을 때,

 말하자면, 꽤 좋았어요."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그에게 그랬듯이, 그때

내게 순수하기로 작정한 거였다

그 자신을 내게 해방시킨 건데,

내가 한 거라고는

내 사랑을 한 것뿐이다

그는 내게 사람

사랑하는 재미를 줬지만,

혹시 나도 그에게 그랬는지 모르겠다







*자기 연민(Self-pity) -디. 에이치. 로렌스


    자신을 가엾어하는 야생을

    나는 전혀 본 적이 없다.

    연약한 새일지언정 제 꼴을 동정하느니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얼어 죽고 말 터다.  



Self-pity

                                                            - D.H. Lawrence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

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매거진의 이전글 위로가 필요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