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 5
그를 눈에 담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내 눈이 깊은 덕분인지
가득 차는 때가 없다
아마도 내가 담은
그의 얼굴이래야
표피에 불과해서 두께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할 터다
"나는 싫어할 이유가 없어서
좋아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그는 눈을 반짝거렸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도,
이성적이며 이지적인 나를
무던하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그에 대한 질투를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가진 것 가운데
나도 가진 것은 목숨뿐이었다
아니, 하나 더 있다
그의 사랑스러움을 읽는 눈,
나는 그를 질투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를 댈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거예요."
그는 그렇게 말했는데,
문득, 그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나의 질투를 감추려면
그의 개성을 미시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를 보는 게 아니라
그의 눈썹을, 콧등을, 아니면
왼손 새끼손가락의 둘째 마디를
본다든지 하는 거다
"'바퀴벌레 산책시키기,' 어때요?
내 취미로 생각 중이에요."
취미까지 질투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그와 내가
싸울 일은 없을 거라고
꽤 즐거운 얼굴을 했다
"근데, 난 바퀴벌레를
좋아한 적이 없어요."
나는 그를 위해
바퀴벌레의 목에
목줄 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내 취미니까,
고민은 내가 할 거예요."
그는 내게서 무엇을 본 걸까
흔히, 나를
'사람'으로 지칭하면
몰개성이 되어버린다
'나'라고 해야 개성이 보인다
'나'를 말할 때의 그만큼
사랑스러운 그는 없다
나는 그가 바퀴벌레를
제대로 본 적도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애인 산책시키기'로
취미를 바꾸게 하려면
고민하도록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끔 확인하는 듯한
눈길을 내게 건넨다
"이번엔 뭘 읽었어요?"
그는 그 눈길에 그 자신이
나의 사랑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담을 줄 알았다
내겐 그게 달콤했다
그는 '아무나'가 될 수 없다
누구든 그대를 보는 그를
아무나로 여기고 있다면, 그대는
자존감이 한참 낮거나
삶을 달관했거나,
그 둘 가운데 하나다
내가 그를 보거나 읽는 눈은,
대개는 그 자신이 그인 줄 몰랐던
그를 그려내곤 했다
그는 그런 나를 좋아했다
"절대, 너는 화가가 못 될 거예요."
그를 나처럼 그리는 이가
나밖에 없다는 건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 된다
독특함은 어떤 사랑에든
사랑을 위한 도구로 쓸 수 있다
물론, 그 독특함은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사랑에 빠진 그대의 열정이 만든다
개개의 사랑에는 그렇게 지문이 있다
사랑에 중고가 없는 이유다
"너와 나만 알면 그만인
내 그림을 네가 그리는 데,
꼭 화가여야 할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달다
방앗간에 날아들어간
참새처럼 나는 즐거웠다
그는 나를 즐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