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May 11. 2022

'들어가자, ' 그게 따뜻하다

생각편의점

'들어가자, ' 그게 따뜻하다





서둘러 보내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닌 요즘이지만

무엇이든 가지려면, 먼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구조 때문일 테지요,

우리는 곁에 온 것을
돌려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다른 것들과 달리

배웅은 익숙해질수록

좋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부터 두어 해 전,

누구도 친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그가 죽었습니다

그는 시집 몇 권을 남겼는데,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어

행복을 말하는 시에도

그 행복의 무게를 담은 시어들로

채운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내가

입질을 할 건 없습니다만,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했던,

내게는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나를 아꼈던 친구였습니다

나로서는 그것이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아쉬움은 전혀 보이지 않고

눈시울도 적시지 않고

"잘 가자, "

영정에 눈길을 던졌습니다

남은 게 그것뿐이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건

사려가 없는 배웅이었습니다




태어나다가 죽고

백발이 되어서도 죽고

어쩌다 하릴없이

죽는 이도 있는 걸 보면,

죽을 사람은 죽습니다


따라서 젊어서 죽는다거나,
혹은 살만큼 살았다는 소리는

망자가 들을 말은 아닐 겁니다

삶이 가진 게 그것이고

그게 언제냐는 우리의
문제가 아닌 것이니까요


죽음에 순서가 없다는 게

틀린 말도 아니거니와

못 갈 길을 가는 것도 아니며

가지 않을 길도 아닐 겁니다

오히려, 살아서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착한 일이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평범한 사람으로서
타인의 삶을 어쩌다 비난해도,
그 삶 자체를

비웃을 생각이 없습니다




살아있던 그를 기억하는 한,

그가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내가 슬퍼하는 건 잔인할 겁니다

그는 아무런 항변이나
짜증도 낼 수 없을 테니까요


그의 죽음 이후에도

그를 잊은 적이 없는 나를 위해,

그는 지금도 살아 있어야 할까요

그가 병을 앓고 있었기에

이 의문이 더 잔인한 것 같은데,

건강했다 해도 이 의문이 정당할까요


달리 말하면, 누구든

나름대로 살다 간 인간이라면

자신의 죽음을 일방적으로

애도하는 것에 오히려

거부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 눈물은 뭔가?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너를 울리는 일이라니,

그렇게 한심한 인간으로

만들지는 말아 줘!"  


바꿔 생각하면, 내 죽음 뒤에는

나를 서둘러 잊으려는 것이

죽은 나를 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염없는 애도를 받는

영혼이 있다면, 오히려,

살아남은 자의 주위에

떠돌며 머물러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그가,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사람'이었다면

더욱 그럴 게 분명합니다

그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내 곁에 더 오래

머물렀어야 했다고 하면, 나는

너무 이기적입니다


거꾸로, 그런 나 자신이

그에게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그렇게 그를 보냈습니다




내가 여덟 살 된 봄날 밤,

이제 막, 나이

서른 중반을 넘긴 아버지가

당신의 아내에게 했던 말을

잠결에 들은 것인데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빨리 잊고, 좋은 사람 만나 잘 살아"


그날, 여러 해 전부터 앓던 그는

때가 되었다고 여겼던 모양이고,

틀린 짐작은 아니었습니다

아침나절에는 조용했던 집안이

학교를 다녀왔을 때는

처음 보는 사람들로 어수선했고

안방에는 병풍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쨌든, 남은 아내는 오히려

죽은 남편을 너무
서둘러 잊었는지 내내

좋은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헤어지며 건네는,

"잘 살라"는 인사는

"잘 죽으라"는 말의

다른 말일 수도 있습니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가장 그럴듯한 작별인사는,

수식이 전혀 없는

"들어가자, "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작별의 순간에,

사랑하는 이로서의

즐거운 만남 뒤뿐 아니라

사랑을 접어야 할 때도,

화양연화를 뒤에 남기고

우리가 가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도 그럴듯합니다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이 맹랑한 게 작별이고,

감정적 연결이 끊겼다 해도

우연이 모이면 내일도

조우할 수 있는 게 작별입니다


그래서,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말리지 않는'

작별의 인사로서도

넉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죽은 그에게도

'잘 가자'라고 한 건

냉정한 인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자"


요즘에야 그가
이런 배웅에 좀 더

따뜻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도
이해해주리라 여기는데,

그때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압도되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현실에 압도당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긴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가 살아야 했던 이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