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별이 꼭 아파야 할까?

모르면아픈사랑Q

by 어뉘

이별이 꼭 아파야 할까?




어떤 사랑이든 그것을 두고 가야 할 때가 오기 마련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그 사랑이 대개 이별로는 끝나지 않는 것일 터다. 그때 사랑이 확실하게 쓴맛을 낸다. 이별이 쓰고 아픈 것은 헤어짐 자체가 아파서라기보다는, '내'게는 끝나지 않은 사랑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별은 사랑의 일부로 보인다. 그리고 어떤 이별이든 아프다. 때로는 삶이 망가질 수도 있다.


감정의 거래에 불과한 연애와 달리 사랑이라면, 거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달콤함을 극대화하고, 이별의 아픔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터다. 그 요령으로 가장 그럴듯한 선택지는?



가. 이별이 불가피하다 해도 사랑이라면,

영원하기를 다짐하고 기대하는 게 자연스럽다

나. 문득 그를 사랑한다고 자각할 때가

이별을 생각해둘 적기이다

다. 그가 변했다고 느끼지만

그 이유를 모를 때 준비해도 늦지 않다

라. 이별에 꼭 준비가 필요한가?

늘 오늘의 끝에는 이별하기로 한다





긁어 부스럼:


우리의 사랑이 남다른 것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와 나'로 묶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조각하며, 사랑을 필연으로 합리화하게 되는 건데, 그걸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그때 그가 그러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그렇게 봤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그대가 하는 사랑은 다를까? 아마도 다르지 않을 터다. 왜냐하면, 사랑을 숙명이나 운명으로 묶는 것은 건전한 이성(理性)의 오르가슴을 그와 그대가 동시에, 그리고 함께 느끼려는 욕구와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나쁜 줄 알면서도 빠지는 마약과 같다.


실제 사랑에 갈등이나 화해는 없다. 사랑할 때와 사랑하지 않을 때뿐이다. 마치 암초를 만난 강물처럼 그대는 사랑의 이름으로 그와 갈등하지만 그 순간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며, 그것을 넘는다면 다시 본 그를 사랑하게 될 터다. 고상하고 어른스러운 사랑은 없다. 그런 사랑이 머리에 들어올 때는 이미 사랑이 끝난 뒤일 터다. '그들이 그렇게 사랑했다'라는 건 그렇게 봤거나 해석했다는 것이다.


랑하며 부딪히는 고민 아닌 고민은 '어떻게 좀 더 사랑할까'하는 것으로, 오히려 달콤함을 더한다. 그 밖의 고민은 그대가 그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을 때 만나는 것들이다. 혹자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아니냐 해도, 사는 이야기는 다큐가 가능하지만, 사랑 이야기는 다큐가 쉽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는 무시하는 게 좋은데, 우리의 한심한 두뇌는 사랑하는 것도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의 사랑은 있을 수 없는 사랑이며, 실화라는 부제가 붙은 드라마 역시, 상식적 추리를 더한 작가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하튼, 사랑에는 해본 사람만 아는 이별 앓이가 있다. 사랑이 아닌 일상에서의 사소한 별리는 흔히 겪을 수 있는 것이어서 이미 알겠지만, 어떤 이별이든 아프고 괴로우며,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사랑하고, 이별을 한다. 그 준비를 하면 덜 아플까?


확실한 건, '회자정리'라는 말이 전혀 여유롭게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어도 이별 앞에서는 쓸데없으며,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한다는 거다. 오히려 함부로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 아프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면 사랑은 더 즐겁고, 이별은 훨씬 덜 아픈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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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그는 하나뿐일 수 있다. 그가 아닌 다른 누가 그대를 사랑에 빠지게 할지, 아니, 과연 있을지의 여부는 알 수 없는 거다. 그러나 영원을 생각하는 그대는 흔히 낙엽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에도 깔깔거리며 웃던 시절, 세상의 사랑 이야기를 제법 섭렵했다고 자신하면서 사춘기의 풋사랑이 아니라, 사랑다운 사랑에 빠졌을 때 가지리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그대의 순수를 나무랄 사람은 없겠지만, 그와 그대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와 그대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 그대는 그를 사랑하고, 그는 그대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와 그대는 다른 사람이다. 그대가 '그'를 사랑하듯 그는 그대를 사랑할까? 그럴 일은 없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이며 헤어지는 이유이다.


같은 이유로, 다시 말해, 그와 그대가 하는 사랑이 같지 않아서, 또한 같은 사람이 아니어서 이별이 아프다. 한참 아프다. 너무 아프다. 영원이라니?! 이별은 시험에 떨어지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시험에는 다음이 있고, 직업엔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뿐이다. 사랑의 달콤함보다 이별의 쓰라림이 더 오래갈 수도 있다. 오히려 이별의 아픔이 영원할 수도 있겠다.


선택지 '가'는 아픔을 담보하기엔 최악의 태도로 보인다.



나.

흔히 입에 담는 '사랑'이란 말 덕분에, 사랑을 '그대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벤트로 여겼던 그대가 평소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왜냐 하면,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대는 그가 그대의 눈에 사랑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며, 거기엔 도저히 이별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이미 늦거나,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못한 허세일 수 있다.


사랑이 생각보다 힘이 센 편이다. 사랑은 머리나 생각으로 하지 못한다. 가슴으로 한다는 이야기는 귀에 박히도록 들었을 터다. 그 말이 맞다. 가슴에는 생각이 없다. 두근거릴 뿐이고, 그 두근거림의 빠르기만 수시로 변할 뿐이다.


이 선택지는 거의 사랑을 해보지 않은 이가 선택할 만하다.



다.

그대가 사랑한 그다. 그는 그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가 변했다고 느낄 때의 주체는 그대이다. 그대가 가장 잘 아는 건, 아무래도 그대 자신이다. 우선 그대가 변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를 사랑하기 전과 사랑한 후의 그대는 같은 그대인가?


가장 오도하기 쉬운 것은, 악명 높은 '익숙함'의 배반이다. 어떤 변화이든 그가 그대 곁에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잊게 하는 것이 익숙함이다. 변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그대의 기대와 바람에 미치지 못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이별을 앓지 않기 위한 준비를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우선 이별이란 말을 되삼키게 할 방법을 찾는다. 이어서, 사랑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집착이 찾아온다. "왜 헤어져야 하는데?" 어떤 준비를 하든 무척 아프다. 아예 준비 자체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변한 것이 맞다면, 그래서 이별해야 한다면, 붙잡지 않는 게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일 터다.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를 떠나겠다 할 때, 그가 나 때문에 괴롭지 않도록 보내주는 것이 사랑일 터다. 터놓고 말해, 그가 그대를 안 보는 게 그에게 즐겁겠다는 것인데, 그런 그를 붙잡는 게 그대의 사랑일 수는 없잖은가? 그를 잡는 것은 그의 행복보다 그대 자신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 된다.


이 선택지의 태도를 가진다 해도, 그대는 엄청 앓을 각오를 해야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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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것은 그것을 하지 않아도 좋은 때가 온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는 게 아닐까? 그것은 그대가 그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당위를 줄 터다. 그리고 오늘 최선의 사랑을 하려고 할 터다.


언젠가 맞을 이별을 앓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 선택지의 태도가 가장 그럴듯하다고 본다.


우리의 주머니에 있는 돈도 잠깐 맡고 있는 것으로 곧 남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며, 나의 그에 대한 사랑도 내가 잠시 하는 것이다. 그대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에게 매달리는 것도 그의 허락을 받고 매달려야 할 터다. 아니면, 그대가 사랑의 이름으로 그의 행복을 막는 것일 수도 있다.


그가 하고자 하면 그대는 무조건 이별해야 한다. 그것이 그에 대한 사랑의 방증이 될 테니까 말이다. 아니면, 그로 인해 즐거웠던 그대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게 된다. 그를 앓는 게 아니라, 그대 자신을 앓는 게 된다.


그대가 아쉬울 거라면, 아직 다 하지 못한 것이 있고, 그것을 해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그대가 사는 한 그의 마음속에 흘려버릴 수 없는 다정한 의미로 그에게 남아있고 싶기 때문일 터다.


그 모든 아쉬움을 채우면서 그에게 매달리지 않으려면, 항상 오늘 그에게 할 수 있는 사랑을 다 하면 될 터다. 되바라진 듯 말하자면, 언젠가 찾아올 이별이라면 오늘 그에게 최선을 다 해도 좋다고 긍정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오늘을 너와 이별하는 날로 치면 되지 않을까? 비관주의자의 계산처럼 말이다.


<비관주의자의 선택>

https://brunch.co.kr/@dgtelier/304


"언젠가는 보내야 하지만, 지금은 네가 이렇게 사랑스럽다."


그가 아무리 그대와의 영원을 말한다 해도, 그 영원은 서로 사랑하고 있을 때까지만 유효하다는 것을 그대만 인지하면 충분하다. 대개는 낙관주의자의 모습으로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을 사소하게 버리기 쉽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한 비관적인 그대가 오늘을 영원처럼 쓸 수 있을 터다.


할 수 있는 사랑을 해서 더 할 사랑이 남아있지 않을 때, 오늘의 사랑을 끝내고 '내일의 또 다른 그'를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처럼 사랑하기로 하는 거다. (이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그대가 진정 사랑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터다.)

이렇게 준비해도 감춰뒀던 자기애 덕분에, 실제 이별은 아프다. 한동안은 가슴이 먹먹할 터다. 그러나 여러 이별 가운데 가장 덜 아픈 건 맞다. 평소, 늘 해왔던 이별을 다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사랑을 둘러쌌던 껍질이 잠깐 상처를 입을 뿐, 곧 아문다. 그대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다했고, 그가 하는 사랑이 그대의 것과 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일 터다. 그리고 그 다름은 그대의 탓도, 그의 탓도 아니라는 것까지 그대는 벌써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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