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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Feb 16. 2022

잘하는데, 좋아해?

생각편의점

잘하는 데, 좋아해?




그대가 마약을 팔려면

그것을 잘 알아야 하지만

그것을 좋아하면 안 되고,

사람을 다루는 일을 하려면

사람을 잘 알아야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면 안 되며,

책을 팔려면 

책을 잘 알아야 하지만

책을 좋아해서는 안 될 겁니다

아니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좋아하는 것을 잃게 되기 쉽습니다


나아가, 죄를 쫓는 형사는 

범죄자를 좋아하면 안 되고,

죄를 구성하는 검사는

죄 만들기를 즐기면 안 되며,

죄를 재판하는 판사는

판단을 좋아하면 안 됩니다


음악, 그림, 노래 그리고 글쓰기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에게는 

더욱 심각할 수 있겠는데,

모든 음악가의 연주회 티켓이 

같은 값에 팔리지 않고,

모든 화가의 그림이 

같은 호가를 가진 게 아니며

모든 작가의 글이 그 수고에 대해 

같은 대가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의식하고, 그 기대에 맞춰

그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과

내가 만족하는데, 그 만족이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다릅니다


"어릴 때는 노래하는 게 좋아서

그 자체를 마음껏 즐겼는데,

그게 직업이 되고 나서는, 그걸

그저 즐기게만 되지 않더라고요"


언젠가, 자신의 말 한마디가 

팬들의 부정적 반응을 일으킬까

걱정하는 눈빛을 감추지 않으면서,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어느 팬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던

아이유(이지은)를 기억합니다


그가 말하고 있던 것은 

흔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직업과 연결되면

이상적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삶이 그렇게 놔두지 않더라는 겁니다


좋아했던 것이 삶의 수단이 되면, 

우리가 감추고 있는 동물의 야생성이 

내 삶에 대한 회의를 부릅니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마도,

내가 좋아해서,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타인이 원해서 해야 하는

비자발적 의무로 변질되는 탓일 겁니다


그래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따로 생각하는 버릇이 필요할 겁니다

좋아하니까 잘하겠지 싶지만,

뭔가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을 딱히 싫어해서는 아닐 겁니다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거나,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공부했고, 무엇을 잘 알든, 

잘하는 것으로 업을 삼고, 

좋아하는 것으로는 삶을 즐기거나, 

삶을 견뎌내는 게 영리하다 싶습니다


잘하는 건 어디든 써도 좋지만,

좋아하는 것 하나, 이를 테면

사랑 같은 것에는

순수를 지켜주는 게 정서적인 

건강한 삶에 필요할 겁니다




어떤 것을 잘하든, 좋아하든

사랑이란 이벤트를 만나서는 

머뭇거리지 않을 여유는 

남겨둬도 좋을 겁니다


마치, 우리 몸이 나 자신도 모르게 

막힘없이 제멋대로 움직일 때

건강하고 유쾌한 나를 있게 하듯,

우리의 무의지적인 쾌감을 

대표하는 오르가슴처럼,

사랑하는 동안은 그저

내 모든 것을 즐기게 합니다


결국, 삶은 죽음까지의 시간을

무엇으로 견뎌낼 것인가의,

결말이 있는 막연함과의 싸움입니다

이 삶을 살면서 얻게 되는 건

가져갈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다 아는 이야기처럼, 사랑은

얻어서 쓰는 게 아닌 덕분인지

어디든 가져갈 수 있을 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드물지만,

꽃다발을 들고 새길을 찾는 졸업시즌이고,

어디로 가는 나라가 될 거냐 고민하는 때여서

이 생각을 편의점에 들여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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