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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an 21. 2022

즐기지 않으면, 어쩔 건데!

생각편의점

  

즐기지 않으면, 어쩔 건데!




인간이 태어나는 것에는,

연속된 시간 안에 있는 

한 구간에 불과한 삶으로서,

죽음에의 예약이 있습니다 


다만, 엄연한 세월을 부인하거나 

그와 다툴 수 없는 우리에게

'나'라는 주체가 만들어지고

우리 뒤로 이어지는 세대의 

또 다른 '나'로 우리를 이어갑니다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있으니까 듣고,

살아있으니까 우리가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사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이야기는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논거로 쓰는, 

오늘을 즐겨야 할 이유입니다




요즘은, 사람을 보낼 때가 되면

소문 없이 병원으로 갑니다

혐오시설로 분류된 

봉안당(납골당) 역시 대개는 

사람이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외딴곳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낯설어진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주위에 아이가 태어나고,

그만큼 사람이 죽는 모습을 일상으로

볼 수 있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골목 어귀에 살던 

미장이 조 씨네 문 앞에

새끼줄에 붉은 고추, 숯을 끼운

금줄이 걸리면 오늘내일한다는 

그의 며느리가 조 씨를 할아버지로 

만들어 준 것을 알 수 있었고,

골목을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자기 동생이 그랬듯이

행여 잠만 자고 있을 아기가

깨지 않도록 함부로 뛰지 않았다지요


그 집 문 앞에 조등이 걸리면

고질병을 앓고 있던, 

얼마 전에 할아버지가 된 조 씨가 

죽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고요와는 달리

낮에도 삶이 없지 않지만,

밤이면 집안 마당 여기저기 

함부로 걸어 놓은 백열등으로 

대낮처럼 밝은 만큼

왁자한 상갓집의 풍경은

아이들의 눈에 며칠 간의 잔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때는, 옆집 함 들어올 때는

함진아비와 혼주의 드잡이질이

시끄럽다고 막말을 해대던 박 씨도

아무 말하지 않았답니다

인간의 탄생과 소멸이

우리 삶의 일상이었던 게지요


하지만, 인간의 명멸하는 모습이

우리 주변으로부터 격리되면서,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고통과

인간에서 주검으로 가는 모습을 

책이나 드라마에서, 또는 영화에서

마치 소모품처럼 죽여 버리는 덕분에

남의 일로 여기면서 우리는

제법 죽음과 서먹해졌습니다


그렇게 죽음에서 멀어졌다면

하여가라도 읊어야 할 테지만 

현실은, 죽음과 멀어진 만큼  

마음이 서둘러 늙으면서

우리의 사람살이가 도리어 

조급해져 버렸습니다

아이들을 선행 교육으로

공부를 포기하게 하거나,

기왕 살기로 했다면 미리 

포기할 게 뭔가 싶은 우리를 

N포세대로 낙인찍는

꼰대들의 허울 좋은 위로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것이냐는 고민을

우리만 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걸 수시로 

일깨우는 앱*도 나와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은 죽습니다."


(한국 사회가 OECD 국가 가운데

자발적 죽음이 가장 많은 사회인데,

다행스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한국 개발자의 작품은 아닙니다)


사랑을 즐기려면 

사랑을 생각해야 하고,

삶을 즐기려면 

삶을 생각해야 할까요

아닐 겁니다 


사랑을 즐기려면

그 도구인 사람을 생각하고,

삶을 즐기려면

불가피한 죽음을 생각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기를 쓰며 살아야 할 이유가

필히 죽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는 게 

우리의 의무는 아닐 겁니다만,

죽음이란 보상이 없다면

삶이 엄청 따분하리라는 걸

알고 있어도 좋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사과나무를 심을 건 없어도

죽음을 늘 마음 곁에 두면, 

이 삶을 가진 우리 자신에게 

좀 더 애틋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삶은 늘 죽음의 양보로 가능합니다 

그 말은 삶을 나름, 흠뻑 즐기려면

죽음과 친해지지 않고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될 겁니다

그리고 좀 더 자신을 

즐겨야 할 이유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탄의 속담*처럼 말이지요









WeCroak 

이 앱은 하루 다섯 번 죽음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는 부탄의 속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Croak'은 개구리나 까마귀 우는 소리의 의성어로, 우리말 '죽는다'의 비속어인 '꼴까닥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아래와 같은 인용·발췌문을 하루 다섯 개씩 보내주는데, 과학기술 뉴스 사이트 'recode'에 따르면 이 앱의 사용으로 10% 정도의 행복도가 오른다고 합니다.


Death is not waiting for us at the end of a long road. Death is always with us, in the marrow of every passing moment. She is the secret teacher hiding in plain sight. She helps us to discover what matters most. - Frank Ostaseski

(죽음은 먼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 주위, 스쳐가는 모든 순간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일상 속에 숨은, 눈에 띄지 않는 스승이다. 그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뭔가를 보여준다. _프랭크 오스타세스키)


 At some point in life the world's beauty becomes enough. You don't need to photograph, paint or even remember it. It is enough. _Toni Morrison

(살다 보면 문득, 세상이 나름 멋져 보인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나아가 기억할 것도 없게 된다. 있는 그대로가 그럴싸한 거다. _토니 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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