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적이면 어떤가요
대개는 의식하지 않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살아있는 우리는
숨을 쉬는 것부터
이미 낙관을 갖고 삽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긍정으로,
미래를 믿지 않는다 해도
우리 곁에 있는 이들 가운데
진정한 비관주의자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막말로 하면, 그런
비관주의자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물론 온전한
낙관주의자도 없지만,
살아있는 모든 삶은
살아있는 자체로 이미
낙관과 함께 합니다
다른 면에서 보면,
피곤한 일상에서도
살아야 할 이유가
보이는 것이 낙관일 때,
비관은 결국,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테니까요
"왜 사나?"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 역시
일흔두 살의 인생을
또 다른 아침이 반드시
오리라는 낙관 없이
매일 밤 침상에
눕지는 않았을 겁니다
실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삶은 끔찍한 일이야.
나는 이 삶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며 살기로 했네."
라고 썼다고 하는데,
염세적이긴 해도 낙관은
버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관이라는 것도, 결국
행복을 추구하려니까
보이게 되는 것이며,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시각입니다
비관적이든, 낙관적이든
그 관점은 '나'의 행복을
어떻게 벼르는가에 대한
생각의 갈래이며, 시각의
다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떻든 우리가 기왕,
무의식적 낙관주의자라면
의식적 낙관주의자가 되어도
누가 뭐랄까 싶습니다
새해라는 게
우리의 요구에 맞춰
있어야 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그것을
맞이하는 것이라면
새해는 우리에게
'태어나는' 것일 겁니다
우리가 낳는 것이지요
그런 새해를 키우는 건
낙관적인 우리가 아니면
누구에게 키우라고 할까요
이 새해에 관한 낙관이라면,
아무리 못 돌보며 키워도
또 다른 새해에 적어도
"한 살은 먹지 않겠나, " 하는
여유라는 것도 포함될 겁니다
나이 먹는 걸 과연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만큼 남은 삶의 부담이
줄어든 것이고, 그만큼
오늘을 좀 더 즐겁게
살려고 하지 않을 텐가요,
우리 인간의 본성이 대개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만
사랑할 시간이
줄어든 것 아니냐는
비관주의자의 질문에는,
사랑은 내가 당신을 몇 년이나
사랑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당신을 지금 당장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현재가
문제라고 되받아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