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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Dec 17. 2021

해를 넘기는 그대의 삶이 축사(柷辭)

생각편의점

해를 넘기는 그대의 삶이 축사(柷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건 

자신의 소용에 따라 

스스로 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외의 것, 

이를테면 타인이나 사회의 

기대에 맞춰지거나, 거기 

최적화되는 걸 겁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편한 인간이 

된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래서 골머리를 앓는 것도 알겠는데

그 삶이 제법 피곤합니다

'나'때문에 말입니다


삶이, 마음껏 즐길 만큼 

유쾌하지 않은 것을

변명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우리는 이미 필요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걔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필요한 사람이란, 그저

도움이 되는 사람과는 달라서 

가끔이라도 그 자리에 

없을 수가 없는 사람일 겁니다

저 말은, 그대가 

있어야 할 곳에 없으므로

그들의 일상이 깨지거나 그들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게 될 경우,

우리가 흔히 등 뒤 쪽에서 

들어야 하는 소리입니다


물론,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건

그 자체의 요구 때문일 뿐

우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그 자신을 위한

부탁이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좀 더 정중하게

우리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은데, 

대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순수하게

우리에게 해 주는 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나'를 버리면 피곤합니다

기어이 서둘러 소속감을 느껴야겠다면

사랑을 하면 될 겁니다

잘만 하면, 엄청 달콤하기도 합니다




'내'가 나를 버틸 수 있는 한

소시민으로 사는 게 뭔 

문제가 될까 싶습니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우리는, 지구의 나이에 비해

잠깐이면 지구를 떠납니다


어쩌면 그 잠깐을, 

제대로 사랑스러운 

사람 하나 아는 것으로

우리의 삶이 얼마든지 

유쾌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자신의, 한참 낮고 

볼품없는 자존감 덕분에

큰 차를 타야 한다거나, 

삼백 원짜리 붕어빵보다

오백 원짜리 붕어빵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작가 유시민의 지적처럼

삶을 가진 모든 세대는 

나름의 굴레를 쓰고

그 무게를 견디며 삽니다

경중의 차이는 크지 않고,

우리가 삶의 각 세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게 되는

그 모양이 세대에 따라 다른 것뿐입니다


그런 모든 세대를 통틀어

삶이 고해일 수 있는 건,

하면 된다는, 같잖은 막연함과 함께

주어진 삶을 주어진 대로 

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내 삶은 남과 같지 않고

남에 대해서 나는 모릅니다

우리가 남을 안다고 하는 것은, 

기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투사한 

나 자신의 모습이기 쉽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그가 

보여준 것만 보는 반면, 

'나'에 대해서는 꽤 아는 듯하니까

현재의 나를 거부하는 몸짓으로 

잘 나가는, 그러나 

잘 모르는 그를 닮기 위해

기를 쓰며 사는 게 우리일 겁니다


그 욕구가 고상하게 보이도록

자기 발전, 성공, 성취라는 등

우리는 근사한 단어를 쓰지만,

도저히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

남의 사회적 성공을 '선'으로 삼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만,

결과론적일 수밖에 없는 

그만의 이야기라는 걸 확인하곤 합니다




자괴감에 아무 데나 주저앉아

세상 다 산 소리를 할 게 아니라면

우리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한 

당장의 삶을 '즐기는' 걸 겁니다


필히 죽는다는 것과, 스스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비틀어보면

현재의 우리는, 삶에 나를

베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대가 

무엇을 사는 걸까요


그대가 베풀고 있는 삶입니다


오늘만 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도 

그대가 벌써 알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고 있든 지금, 그대의 삶을 

칭찬해야 할 이유일 겁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자신에게 큰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아서, 말하자면

때로 남이 권하는 커피는 

간단하게 거부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삶 전체를 지배할 삶의 방식에서는

남과 같아야 한다고 

그대스러움을 무시하는 

그대 자신에게 오히려

미안해하는 게 맞을 겁니다


모든 타인은 무시한다 해도

자신에게는 예의를 다해야 합니다

그대밖에 없잖은가요?


그런 그대의 사는 모양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딘가에는 똑같은 그대를 사랑해 줄 

또 다른 누군가도 있기 마련인데,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대를 사랑하게 되는 사람은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 겁니다

그대가 하나뿐이라는 걸

이미 아는 것으로 충분할 테니까요






새해 달력을 보면서 문득, 그리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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