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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Dec 03. 2021

아무나, 누구나 그리고 누군가

생각편의점

<아무나>



아무나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

이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세상에 남자나 여자는 쌨어."


이 말을 내뱉고 있는 그대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거나,

이제 막, 하고 있던 사랑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인가 싶은 느낌이라도

한 번쯤 받아본 적이 있다면

우리가 하는 사랑이

지극히 사적이며 특별하지 않고는

그에게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 테지요


테레사 수녀가

일반인의 삶과는 한참 다른

성인의 삶을 살았다고 칭송해도

"그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흔쾌히 '그렇다'라고

답하는 것에는 회의적입니다

타인이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동정심을 인간에게 가졌지만,

그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데는

곧바로 동의할 수 없는 겁니다


같은 의미에서 법정도

그 삶에서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그 역시 인간의 삶을 깊이 동정했지만

자신의 책을 절판해달라는 유언에서

자기 자신은 인간의 동정을

바라지 않았던 결기를 봅니다

그런, 그가 우리 가운데

누군가의 '나'를

사랑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삶이 존경받는 것에는

박수로 지지하는 편이지만,

인간을 사랑하기보다 인간의 삶을

동정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테레사 수녀 옆에 있거나

법정 옆에 있었다고 해서

그들의 사적인 사랑을 받을 기회가

있었을까에는 회의적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더불어 삽니다

서로 다른 외로움을 동정하며

이 삶에 녹아들기 위해 '아무나'

인간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 많은 인간 가운데,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비로소

그가 '내'게 의미가 되는 건

언제나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누구나>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나'를 없애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든 사랑을 받으려는 건

연예인이나 정치인. 그리고

법적으로는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직업이어야 할

매춘남녀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직업에 편견은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 아니면 여성과 남성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해서 생긴 일이고,

다른 누군가가 아닌 그들이 한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그 일을 하지 않는 그가

비난받아야 한다 싶습니다


말하자면, 도둑은 도둑다워서

도둑질을 해도 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잡힌다면 그는 도둑은 못됩니다

그래서 도둑은 교도소에 없습니다

도둑질을 못하는 인간만이

그곳에 갇혀 있기 마련입니다


'국민'을 입에 달고 있는 정치인이

국민을 가장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정치인들의 행태에서 흔히 봅니다

국민을 가장 사랑해야 할 인간이

그들일 텐데 말이지요


한편, 매춘남녀의 정조라는 건

역설적이게도 아무나 사랑하며,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야 그의 일이 직업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정조를 깨는 것일 겁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 이유로

누군가 한 사람을 품은 사랑이

좀 더 순수하게 보일 때도 있을 겁니다)


그들과 달리,

우리 같이 일상을 견디는 사람들이

나를 즐기려면 아무나가 아니라

누군가인 그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사는 맛을 제대로 보려면

나는 아무나가 아니라 바로

누군가인 그를 사랑해야 할 겁니다


그의 의미가 되어 나를 인정받고,

내게 의미가 되는 그를 인정하는 것으로

인생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만 사랑해도,

그리고 한 사람의 사랑만 받아도

충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사랑은 받는 게 더 즐거운데,

왜 자꾸 사랑하라는 건가 싶은 그대는

'익숙해지는 것'의 본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나

뭔가를 원하는 것은 그것에

얽매어 있는 것과 같은데,

익숙해진 것이지요


지금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대만

잊고 있거나, 모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두 사람이, 다시 말하면,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그대를 버리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때는

그대가 그를 앓을 때이겠고,

그때는 그런 그대의 앓이를

동정하는 이는 드물거나 아예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사랑받던 사람에서

사랑을 구걸하는 이로 바뀌는 이유가

바로 '익숙해짐'을 즐기기만 한

그대 자신의 낭만 때문일 테니까요

'넌 가슴을 앓아도 싸!'라는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대체로, 우리 자신은

사랑받으려고 온갖 궁리를 하면서도,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사랑을 원할 때는

그를 비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그다지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하는

그대에의 사랑을 그대가

기꺼이 즐기기로 할 때,

그대도 그를 사랑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대 역시 언제든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실연을 위로할

마음의 피난처는 필요 없을 겁니다


구속되지 않는 것, 얽매이지 않는 것,

자유를 얻는 방법은 간단해 보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그것을 즐기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그가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그를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하늘이 아무리 흐려도 오늘이 꽤

괜찮은 날이라는 것이 분명해질 겁니다






기사와 글의 내용과 한참 다르기는 하지만,

이 글의 동기를 마련해 준 기사의 링크를 아래 붙여놓습니다.


http://news.imaeil.com/SocietyAll/202108132157596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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