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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Nov 19. 2021

부자에 관한 발랄한 생각

생각편의점

부자에 관한 발랄한 생각




누가 처음 말을 했든,

내가 기억하는 이 말은

이병주의 소설에서였습니다


"돈이 말하면 사람은 침묵한다"


읽으면서 거의 즉각적으로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게 되는 

그 의미로 쓴 게 맞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 말이 시사하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문득 떠오른 이 말 덕분에

쓰는 글이기에 적어놓습니다




돈은, 그것을 쓸 때 

비로소 말을 하는 것이므로

따져보면, 돈을 가진 자가 

늘 부자는 아닐 겁니다

돈을, 쓰는 자가 부자이지요


많은 사람이 돈 많은 이의 

곁에 서려고 하는데, 속담처럼

'떡고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겠지만

그가 돈을 많이 가진 것이, 대개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란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탓일 겁니다


어쨌든, 쓰지 않는 그는

'돈 많은 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부자라고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여기서, 경제학의 기초라는

희소성의 원칙을 말하거나

이 세상의 재화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대가 돈을 번다는 것은, 

넓게 보면, 다른 누군가가

그 돈을 벌 기회를 가로채는 것으로

그 누군가를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할 필요기 없을 겁니다

좀 더 나아가 

부를 상대적으로 보는 한

어떤 광고 문구처럼

우리 모두 '돈 많은 이'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 역시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나'가

나름 특별하며 귀한 존재라고

윽박지르는 세뇌적 교육 덕분에

그런 줄 알고 살다가

머리가 크며 나이를 먹고

자신이 장삼이사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과 마주치면서

느끼게 되는 생경한 열등감으로

억울해하다가, 역설적으로

특별하지 않은 것이

특별한 것일 수 있다는 

성찰을 해야 하는 게 삶입니다


이 사회에 묻어가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한데

'돌아이'로 살 자신이 없는 한,

'할 수 있는' 삶이라기보다는

'하게 되는' 삶을 사는 게

우리가 아닌가 합니다


이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부자는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인 게 보입니다

돈도 물건이 아닐 수 없으니까요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요


그래서, 동네 마트에 들어가 

초콜릿바를 집어 들고 값을 치르는,

그야말로, 돈이 말을 하게 하는

열한 살 아이에게서 부자를 봅니다


빌 게이츠가 회자되는 것은

그가 쓸 돈을 갖고 있기 때문일 텐데,

그래서 부자는 아닌 듯합니다

'돈을 가진 이'에 지나지 않으며

죽을 때는 놓고 갈 게 뻔합니다

가진 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돈을 쓰는 그는 

부자라고 불릴 만합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부자는,

돈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지만

쓸 줄 모르는 사람이기 쉽습니다

(물론, 돈을 '더' 벌기 위해 

쓰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병주가 말한 대로 사람을 

침묵하게 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것도 쓴다고 하기는 하지만

초콜릿바를 사려는 건 아닙니다)


한 마디로, 그는 돈 가진 빈자인데,

우리 주위에 알려진 이로서

자신의 부를 제대로 즐긴 부자라면

법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더 갖지 않아도 좋은 여유를

즐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알다시피, 입적하면서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까지 가져가지 않겠다"며

자신의 이름이 걸린 책의 절판을

요구한 것이 그가 남긴 부(富)였습니다


단지 갖고 있기만 했다면 

부자일 수 없었을 겁니다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그가 쓰다가 간 삶의 방식은

부자로서의 삶이라 할 만합니다


가져야 할 만큼만 갖고, 

먹어야 할 만큼만 먹고

줄 것이 없어서 주지 못하는 이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부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적수공권, 빈 손으로 왔는데,

빈손으로 가는 게 이 세상에 대한

예의인 것 같기도 한 것이,

삶은, 누구의 것이든 결국 

써버리는 것이 분명하니까요

버는 만큼 다 써버려야 하냐 싶지만

쓴다는 건 버리는 것과 다릅니다


말하자면, 그대가 어딘가에

돈을 쟁여놓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겨울, 따뜻한

이불속에서 그와 즐기려고

기왕이면,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쌍쌍바를 사백 원을 내고 사는 것,

그게 아이스크림이 아니고 

그게 '쌍쌍바'이어서가 아닌,

그 값을 치르는 행위가

그대를 부자이게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럭저럭 부자로 사는 거라는

발랄한 생각이 든 겁니다


그대 마음에 사랑이 넘친다 해도

그걸 그의 앞에 드러내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랑이 많은 이 곁에 있으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싶지만

아닐 겁니다

그대이든 그이든, 

누군가는 사랑해야 받겠지요 


가졌지만 쓰지 않는 이를

부자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저 돈 많은 사람이겠지요


"같이 마실 거지?"


고즈넉한 저녁 즈음

그와 함께, 되도록이면 

한산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 두 잔 값을 치르는 그대가

꽤 부자로 보입니다   


또는, 거리를 지나며,

누군가의 그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흔쾌히 받아 들며, 

자신의 부자스러움을

느껴도 나쁠 게 있나 싶습니다

그 배포 작업에 대가가 있다면

내가 전단지를 받아 드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내가 그에게 

돈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요 




우리의 삶이 어떤 모양이든

몸 하나로 충분한 게 분명하므로

먹으려고 산다는 것에 비해

살려니까 먹는다는 것이 왠지

더 고상해 보이는 것처럼

돈 벌려고 일을 한다는 것보다

일을 하니까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고상해 보입니다


결국, 삶의 행복이나 품격은 

내게 필요한 것을 알고

그것을 보는 시각이나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서 결정될 겁니다


삶이 '내' 것이고, '내'가 사는 한

어떤 의미로든 진정한 부자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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